니모를 찾아서
감독 앤드류 스탠튼, 리 운크리히 (2003 / 미국)
출연 앨버트 브룩스, 엘렌 드제너러스, 알렉산더 굴드, 윌렘 데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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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모를 찾아서.

1. 픽사 애니메이션 훑어보기. 그 네번째.
 '월이'에 이어서 '벅스 라이프'에 이어서 '니모를 찾아서'.
그럼, 세번째인데?
사실 '라따뚜이'를 먼저 보았는데, 니모를 찾아서의 감상을 먼저 쓰고파서 이렇게 땡겨 쓴다. ;

픽사의 애니메이션을 보고 있는데, 영화 한편, 한편마다 그 섬세함에 놀래고 있다.
만약 극장에서 봤으면 쉽게 놓쳐버렸을 장면들을 PC로 보아서 그런가라는 생각도 했으나 다른 애니메이션을 잠깐 보고나서 그 텅 비어있는 듯한 장면들로 인해 픽사의 놀라움을 발견했다.
동시에 픽사 영화들의 시나리오가 여리고 약한 캐릭터가 멋진 성공을 이뤄낸다는.
어쩌면 굉장히 단순한 시나리오일 수 있겠다라는 생각을 했는데, 그런 생각을 묻혀버리게 하는 아름다운 그림과 상상력이 있기에 픽사의 팬들이 픽사의 영화에 반해버리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니모를 찾아서가 그러했다.
아들 니모를 잃어버려 아버지 말린이 찾아 헤매이면서 모험, 도전, 여정을 거듭한다는 내용은 뻔하디 뻔하다.
게다가 넓디 넓은 바다를 배경으로 약한 물고기를 주연으로 한 영화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쩌면 사실 굉장히 뻔한 내용이다.
아마 상상력을 점수로 치면 픽사 영화 중 니모를 찾아서가 제일 낮은 점수가 아닐까 싶기도 한데..


2. 그 놀라운 섬세함과 상상력.
 하지만, 반대로 상상력 부문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차지할 지도 모르는 영화가 니모를 찾아서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눈이 아닌 다른 사물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는 것은 그 사물에 대한 많은 관심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물고기의 눈으로 바다를 바라보는 것 뿐만 아니라 인간의 세계를 바라보는 니모를 찾아서.
자칫하면 어설퍼질 수 있는 장면을 매끄러우면서도 유쾌하면서도 세심하다는 생각이 들게 하기까지 하는 그 상상력에 만점을 준다.


3. 니모와 말린.
 그 어떤 섬세함에 반했나를 떠올리다가 당장에 니모와 말린부터 떠올랐다.
니모와 말린.
영화에서는 광대어라고 하는데, 물고기의 종류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니모와 말린의 디자인은 정말 끝내주었던 것 같다.
사람의 얼굴 모양새와 같으면서도 물고기라는 데에 어색하지 않다랄까.
물고기를 오동통하게 표현하면서 사람의 얼굴과 비슷하게 그려 그 표정의 섬세함을 볼 때의 그 감탄.
대부분의 사람들이 갖고 있는 물고기는 납작하고 양쪽에 눈이 있다는 편협된 생각을 깨버리는 그런 상상력.

정말 멋졌다.
귀여웠고. :)


4. 한 편의 소설. 아직 어린 내가 배워야할 인상적인 동화.
 첫장면에서 말린과 말린의 아내가 잠깐 나오는데, 곧 사라진다.
아.. 애니메이션 치고는 처음부터 슬픈 장면이어서 훌쩍거릴 뻔했다.

하지만, 그 장면이 없었다면, 말린의 겁 많은 성격과 니모의 독특함이 살아나지 못했을 것이라는 것도 잘 안다.
이 영화의 시나리오가 돋보였던 것은 겁쟁이 말린의 모험이었기 때문.
그냥 물고기의 여정이었으면 그냥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니모보단 말린 이야기가 많았던 것 같은데, 사실 주연은 말린과 파란 물고기, 도리가 아니었나?
단기 기억 상실증이라고 자기를 소개하는 도리는 니모를 찾아서에서 정말 최고의 조화를 이룬 캐릭터가 아니었나 싶다.
만약에 그냥 그럭저럭 그런 물고기와 말린이 우연히 친구가 되어 여정을 걸었다면, 싱거운 영화가 되었을테지만, 단기 기억 상실증.
우연히 기억한 시드니 어쩌고라고 중얼거리며, 자신의 존재조차 망각하기도 하고 말린이라는 이름도 계속 외우지 못하는 그런 캐릭터.
(심지어 자기 이름까지도.)
어쩌면, 123으로 시작하는 주민번호를 외우기 버벅거렸던 나라는 존재가 공감이 되어서 그렇게 보였는지는 모르겠다. (...)

니모.
말린과 도리가 주역이었지만, 니모가 없었다면, 말린과 도리도 있을 수 없었을테지.
수조관에 넣어진 니모가 겁에 질려서 "암고홈(집에 갈래요)", "두유 노우 마이 대디즈?(우리 아빠 어디있는지 알아요?)"라고 할 때엔 모니터에 손을 넣어 만져보고 싶었다. ;
그만큼 픽사가 니모를 훌륭하게 그렸다는 것.
그리고 불가사리가 자신의 출생을 "e베이"라고 외칠때 피식.
또 니모가 바다에서 왔다고 하자 '자크'라는 캐릭터가 소독을 하는 장면엔 영화 "월이"가 떠올라 갸우뚱거렸다.
(월이에서 청소로봇 'Wall-E'가 우주함선 '액시엄'에 들어가 소독을 받는 장면 때문에.)

그리고 검은색과 하얀색의 줄무늬 물고기, '길'이 등장해 공기 정화관에 껴서 "도와줘요!"라고 외치는 니모에게 "안돼! 스스로 들어갔으면 스스로 나와."라고 말하는 장면.
행운의 지느러미를 갖고 있는 니모가(사실은 기형적으로 작은 지느러미를 갖고 있는 니모가) "못 해요. 한 쪽 지느러미가 약해요"라고 말하자, "진정해. 지느러미와 꼬리 번갈아 흔들어봐"라며 방법을 알려주는 길.
그리고 "나라면 포기 안해"라고 말하며, 한 쪽 지느러미가 뜯겨진 모습의 길.


니모가 수조관에 들어갔을 때, 니모도 많은 걸 느꼈겠지만, 나도 많은 걸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혼자 스스로 해야한다는 책임감과 그것에 필요한 자신감.
그리고 잘 알지 못하는 니모에게 방법만은 알려주는 진정한 어른 모습의 길.
그리고 성인의 문턱인 20살을 갓 넘긴 '나'라는 녀석.
나는.
나는 이제 무얼 하면 되는가.
아직 많은 것을 모르는데, 알아야만 한다고 하는 건 욕심일까 아니면 순리일까.
아니면 진짜 '바보'인가.


말린과 도리도 마찬가지였다.
겁쟁이 말린이 망설일 때에 계속해서 헤엄치자고 하는 것도 도리였고, 모르는 길을 무식한 것 같았지만 부딪치고 보는 도리에게 나는 깊은 인상이 남았다.

또 하나 있다면, 거북이 무리가 해류를 타는 장면. :)



* 결론
 픽사의 애니메이션은 그 섬세하고 아름다운 그림만으로도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행복감을 느끼게 해주지만.
진짜 픽사의 영화들이 아름다울 수 있는 건 그 메세지. 그 시나리오 때문이 아닐까.
나는 애니메이션과 영화를 확실히 구분 짓는 편인데, 많은 만화나 애니메이션들이 내용과 주제 등을 무시하며 그 그림에만 치중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니모를 찾아서를 포함해 지금까지 봤던 픽사의 애니메이션들은 충분히 '영화'라고 할만한 가치가 있다.

픽사.
그들의 끝은 과연 어디일까?

창의력과 상상력으로.
동시에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그들.

아마 그들에겐 끝이 없을 것이다. :)


끝.



2008.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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