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팟 셔플 2세대_버스 안에서.



아이팟 5.5세대의 하드디스크가 운명하게 되면서 외출을 하려는데, 무언가 막막해졌다.
책 한권 들고 나가지만, 그리 탐탁치 않았다.

이전에 쓰던 애삼천이를 쓰자니, 음반 정리도 조금 필요할테고, 무엇보다 충전이 필요할 법 했다.

그냥 나가려다 아차 싶어 셔플을 바라보았다.

이 녀석.
내 아이팟 5.5세대가 없을 적에는 꽤 쓸모가 있던 녀석인데, 5.5세대가 들어오면서 그냥 전시용이나 소장용 정도로 전락했던 녀석이었다.
애삼천이를 쓸 때엔 애삼천이의 느린 로딩 속도 때문에 셔플을 종종 사용하곤 했는데, 5.5세대는 그럴 필요가 없어져서 셔플을 갖고 다니지도 않았더랬다.

여하튼, 이 녀석을 챙겨 나갔다.
배터리 체크도 안했던 터라 재생이 의심스러웠으나, 전원을 넣고 재생 버튼을 누르자 역시 바로 반응했다.

헌데, 나는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이 녀석은 나에게 '언니네이발관'의 '너는 악마가 되어가고 있는가?'를 들려주었다.
언니네이발관을.

나는 순간 멍해져서는 내가 언니네이발관을 듣고 싶어 하는지 어떻게 알았는지 이 녀석의 능력에 마냥 신기해했다.
그리곤 다시 발걸음을 옮겨서 음악을 듣고.
그리고 다음 곡은 무얼 들려줄까..라는 궁금증으로 셔플의 선곡을 기다렸다.

다음곡은 '장기하와 얼굴들'의 '느리게 걷자'이었고.
오랜만에 듣는 장기하의 목소리에 심취되었다.

그리고 버스 안에선 자우림의 '#1'으로 몇달만에 김윤아의 목소리를 듣는 것인지 싶었지만, 셔플이 매우 대견스러웠다.



셔플의 매력은 이런 것이다.
몇몇 사람들은 액정도 없는 것이 잘 팔리는 이유는 단지 타사의 동급 mp3p에 비해 저렴한 가격 때문이다라고 일축하기도 하고, 애플의 제품 중 가장 쓸모없는 제품이다라고들 평가하기도 한다.
또한, 이번 3세대 셔플을 보면서 액정이 없는 것도 모자라 버튼도 빼버렸다면서 악평을 내뿜었다.
물론 그 악평에는 환율로 인해 급상승한 아이팟 라인업의 한국 판매 가격이 있었지만.

어쨌든, 아이팟 셔플은 그런 의미의 제품이 아니다.
단순하 쥬크박스가 아니고, 그야말로 셔플.
기기가 선곡해주는 곡을 사용자가 자연스럽게 듣는 것이 바로 셔플의 존재 이유이다.

아이팟 셔플은 단순히 타사의 저가형 mp3p와 비교 대상이 아니고, 또한 아이팟 라인업의 저가형 모델도 아니다.
아이팟 셔플은 모델명에서 뿜어져 나오듯 사용자에게 아이튠즈의 라이브러리에서 무작위로 음악을 골라 들려주는 매개체 역할을 할 뿐인 제품이다.
그렇기에 작은 액정이라도 셔플에겐 필요가 없고, 셔플 재생을 위한 몇가지 버튼과 관련 디바이스만을 탑재하면 셔플에겐 충분하다.
타사의 저가형 mp3p는 아이팟 셔플의 의미와는 다르게 메인 디바이스 역할을 수행하도록 설계되었지만, 아이팟 셔플은 메인 디바이스가 아닌, 아이팟 클래식이나 나노를 갖고 있는 사람이 부가적으로 들고다니는 정도만으로 사용하도록 설계되었다.
혹은 PC나 맥에서 아이튠즈 라이브러리를 고르는데 질린 사용자가 포터블 용으로 셔플을 즐기고 싶은 정도의 제품을 찾고자 할 때 적합하도록 만들어진 것이다.
때문에 아이팟 셔플은 타사의 동급 mp3p와 비교할 수 없는 또 다른 음악 재생기의 영역을 지닌 제품이며, 아이팟 라인업에서 가장 저렴한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으나 결코 저가형 모델로 존재하기 위해 아이팟 셔플이 있는 것은 아니다.

흔히 아이팟 셔플을 비교할 때, 아이리버의 엠플레이어나 S 시리즈 등을 비교하곤 하는데, 이에 대해서 나는 이해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애플은 아이팟 셔플을 설계하기 위해 아이튠즈 프로그램을 잘 다져왔다.
셔플의 기능을 최대한 살리기 위한 설계를 이전부터 시행해 왔으며, 소니와 더불어 아이팟의 셔플 기능은 그 어떤 음악 재생 디바이스보다 훌륭하다.
그런 과정 속에서 아이팟 셔플이 탄생했으며, 아이팟 셔플은 자신이 재생한 음악을 다시는 재생하지 않도록 설계되어 있으며, 또한, 태그를 기반으로 한 사용자의 취향을 파악하여 진정한 셔플을 사용자에게 선사한다.
하지만, 아이리버에서는 그런 연구가 실질적으로 부족했으며, 이는 수많은 프로 유저들의 사용기에서 증명되었다.
때문에 엠플레이어나 S 시리즈와 아이팟 셔플을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다.
이에 대해서 S 시리즈에는 액정이 있다거나 라디오 기능이 된다는 근거로 아이팟 셔플보다 우수함을 증명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아이팟 셔플의 존재 가치를 잘못 판단한 경우라고 생각한다.
아이팟 셔플보다 기능적으로 아이리버의 S 시리즈는 우수할 수 있으나 위에서도 계속 언급했듯이 아이팟 셔플은 셔플 그 자체의 기능만으로 존재하는 기기이기에 S 시리즈와의 비교가 불가능하다.
이런 비교는 록히드마틴의 전투기 F-35와 BMW의 슈퍼카 M3를 비교하는 것과 같은 꼴이다.
두 기종은 엄연히 지향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에 비교가 불가능한데, 아이팟 셔플과 그 외의 타사 동급의 음악 재생 디바이스와의 비교도 마찬가지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아이팟 셔플의 신제품은 아이팟 셔플의 가장 정점에 서 있는 제품이라고 생각한다.
아이팟 셔플에서 꼭 필요했던 기능은 셔플로 음악을 듣되, 오랜만에 듣거나 사용자의 아이튠즈 라이브러리에 있던 곡이라도 처음 듣는 곡일 수 있을 때, 제목을 알고자 하는 기능이었다.
헌데, 셔플의 진정한 의미를 해칠 수 있는 액정을 탑재하지 않으면서 제목을 알리고자 하는 방법은 무엇이 있었을까?
바로 이번 아이팟 셔플 3세대와 같이 음성으로 곡 이름을 알려주는 것.






조금 전에서야 PC와 셔플을 연결해 아이튠즈로 동기화 기록을 살펴보니, 2008년 12월 27일 기록이 마지막 기록이었다.
무려 3개월 동안 이 녀석과 별거했던 것.


여기까지 2009.03.21자 기록.


2009.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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