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2009년 5월 24일.

노무현 전 대통령님의 조문을 위해 덕수궁 앞 대한문 분향소에 다녀왔다.
사실 클리앙에서 있다가 봉하마을에 같이 갈 사람을 모집하기에 바로 쪽지를 보내보았으나, 24일, 일요일에 있던 선약을 깨지 못해 불참하고 말았다.
여하튼, 나중에 쪽지를 보내보니, 그 분은 다른 분과 같이 조심히 다녀오셨다고 한다.

약속을 챙기고는 본래 6시에 빠져나올 생각이었으나 마침 5시에 끝나 저녁을 먹으라는 권유에 나는 거절하고 부랴부랴 동암역에 몸을 실었다.
듣기로 오전에만 해도 1시간을 기다려야했다고 했으니, 적어도 2시간은 기다려야 할 것이라는 계산이 깔려 있었다.

하지만, 바로 떠나지 않고, 동암역 북부 광장을 둘러보았다.
나는 이미, 인천 동암역에도 임시 분향소가 설치되어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굳이 대한문 즉, 서울시청까지 다녀온 것은 서울시청은 대한민국의 짧은 근현대적, 역사적 의미가 강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조계사와 서울역에도 분향소가 설치되어 있었으나, 경찰들이 꿋꿋히 막고 있는 대한문 분향소로 굳이 발걸음을 옮긴 시민들은 아마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나의 복장은 생천 처음이다시피 한 정장 자켓에 흰 셔츠, 어두운 청바지를 하고 있었는데, 사실 정장을 모두 차려 입고 싶었으나 바지 밑단을 아직 줄이지 못해 바지는 입지 못하고, 그나마 어두운 계열을 택했더랬다.
나중에는 예의에 어긋나는 청바지 따위라니라면서 후회 따위를 하기도 했다.
지인들은 왠 정장이느냐, 덥지 않느냐라고들 했지만, 나는 애써 다음주에 있을 공연을 대비해 테스트해보는 것이라고 둘러댔다.
아버지께도 그리 말씀드렸더랬다.


서울시청역 2번 출구가 대한문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내리면서 까먹지 않기 위해 2번 출구, 2번 출구를 되새기고 있었는데, 지하철에서 내려 계단을 올라오자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물론, 지하도였다.

교통 카드를 찍는 출입구까지 길게 늘어서 있는 걸 보니, 2번 출구를 굳이 찾지는 않아도 될 것 같았는데, 문제는 끝이 어디인지 보이지 않았다.
2번 출구가 아닌 4번 출구로 줄의 끝을 찾기 위해 계단을 올라갔다.
5번 출구에는 경찰들이 빼곡히 길을 막고 있어, 흠칫했다.
사진이나 영상으로 볼 때엔 그냥 욕이나 해주고 싶은 방패를 든 경찰들의 모습이지만, 실제로 그들을 보면, 흠칫하며 알 수 없는 두려움이 몰려오곤 한다.

여하튼, 4번으로 올라갔는 데에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
대체 어디가 줄의 끝인가.
이미 대한문은 보이지도 않는데.

사실 보이지 않는 것이 정상이다.
일명, 닭장차라는 경찰 버스로 인해 목을 빼내어도 절대 보이지 않으니 말이다.

줄은 서울시청을 지나 서울신문사 건물까지 늘어서 있었다.
줄은 서기 시작한 시간은 오후 6시 31분이다.


오후 6시 31분.




서울시청역 4번 출구




서울시의회 건물 - 아래까지 꽉 찬 경찰버스.




늘 겸손하고 친절한 자세로.. - 경찰 버스 벽.




서울시청 옆.



처음 도착해서는 이러저러한 사진들을 찍고 있었다.
비록 내 카메라가 아직 내 손에 돌아오지 않아서 자꾸 찍을 때마다 소리를 내는 노키아 6210s로 찍어야했지만, 기록을 위해서라면..이라는 생각으로 찍고 있었는데.
사실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디지털 디바이스로 기록을 하고 있어 이후에 웹을 찾아보면 수없이 많이 나올 자료들이 있을거라는 생각으로 폰을 주머니 속에 넣었다.
이후에 나만의 기록이 될 것들만 촬영을 했더랬다.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고, 아마 2번 출구부터 줄의 끝을 찾으러 온 모양으로 보이는 사람들은 놀라는 눈치면서 이 줄을 서야하나 말아야하나를 고민하는 사람도 제법 있었다.
동시에 나같이 아무 표정 없이 그냥 줄을 서는 사람이 대다수였다.


서울시청역 지하로 들어가자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서울시청역의 냉난방기가 고장이 나 6월 1일 수리 및 작동 예정이란다.
더불어 조계사에서 분향소를 설치했으니 그리로 가세요라나..
그들은 서울시청 앞에 시민들이 모이는 것을 병적으로 싫어하나보다.

나는 잘 몰랐지만, 사람들은 꽤나 더웠나보다.
그러던 차에 몇몇 사람들이 물통과 종이컵으로 물을 손수 한명한명씩 나누어주고 계셨고, 덥고 꽤 오래 기다려야 하니, 물을 드시고 가라고 하셨더랬다.
나도 한잔 받으며, 감사하고 수고하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었지만, 그 수고하시라는 말이 차마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
수고라..


서울시청역에서 받은 물.




2번 출구 앞.



나야 친구들이 이런 문제에 공감하지도 않고, 관심도 없으니 홀로 왔지만, 동료들과 같이 온 사람들은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내 앞의 분들은 아마 교사로 보이는 분들이었고, 뒷 분들은 학생으로 보이는 친구사이로 보였다.
동시에 이들은 이번 사건과 정치, 시사 문제에 대해서 작은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었고, 그 상황이 나는 어찌나 부럽던지 아쉬운 마음이 내내 들곤 했었다.

지하에서 있을 때에 막 만들어낸 종이 팻말을 들고 걸어다니며, 구호를 외치는 이들이 있었는데, 시민들의 공감을 얻지 못하고, 돌아갔다.
2번 출구의 직전에서는 누군지 모르겠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님의 진짜 유서라면서 인쇄된 A4 용지를 나누어주고 있었는데, 나는 이미 네트에서 보았던 터라 받지 않았다.
동시에 아래 사진에도 있지만, 큼지막한 종이에 진실이라면서 유서가 붙어 있었는데, 많은 시민들이 굉장한 관심을 두고 있었다.
여기저기에서는 많은 이야기들이 있었다.
저거 진짜인가봐.. 혹은 저게 진짜야? 라는 식의 반응들.

현재까지 나온 바로는 사실이 아니다.
연합뉴스에 기사에 의하면, 일부 언론들의 잘못된 취재 경쟁으로 인해 오보되었고, 해당 기사는 이내 사라졌지만, 해당 기사를 보았던 사람들이 캡쳐하여 널리 퍼져가고 있다고 한다.
즉, 객관적인 사실은 그 어디에도 입증되지 않았다.
따라서 서울시청역 벽보에 저런 종이가 붙어있다면, 시민들은 저게 진짜야? 라는 반응이 아니라 원출처는 어디인지를 되새겨봐야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작금의 문제는 이러한 집단지성의 폐해 뿐만 아니라 현재의 대한민국 언론사들과 경찰들을 믿을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며, 더군다나 가장 객관적이고, 높은 신뢰도를 지녀야 할 연합뉴스조차도 신뢰성이 떨어진 것이 문제이다.

이러한 사태의 책임은 현 정권 뿐만 아니라 현재의 대한민국 언론사 모두에게 있다.
하지만, 더욱 결정적인 책임은 그 동안 관심이 부족했던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있다.


서울시청역 2번 출구 앞에 붙은 벽보.




서울시청역 2번 출구 벽에 붙은 종이.



여하튼, 그렇게해서 서울시청역 4번 출구부터 3번 출구까지 왔고, 도착한 시간은 오후 7시30분경이었다.

계단에서는 한겨레 신문을 무료로 받게 되었는데, 덕분에 당일의 봉하마을 상황을 알 수 있었다.
봉하마을 역시 모여든 수많은 차들로 인해 1시간 가량을 걸어가야했으며, 30분 가량은 줄을 서야했단다.
미리 준비했던 점심은 점심 시간이 되기도 전에 바닥이 나버렸고, 오후에는 갑작스러운 소낙비가 내려 조문객들을 당황하게 하면서 동시에 슬픔에 잠기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담겨 있었다.


서울시청역 3번 출구 앞.




서울시청역 3번 출구 앞.




한겨레




그러고보니, 2번 출구가 아닌 3번 출구를 빠져 나와 이상하게 생각하던 참이었는데, 이번에도 역시 줄의 끝이 보이지 않았다.
아직 해는 지지 않았는데, 곧 어두워질 모냥이었다.


서울시청역 3번 출구 앞.




영국대사관까지 이어진 줄.




덕수궁 돌담 옆길.




영국 대사관 앞.



줄은 여전히 끝이 보이지 않다가 서울 시의회가 가기 전에 돌아서는 영국 대사관 쪽으로 이어져 다시 3번 출구가 보이는 곳까지 돌아왔다.
시간은 오후 9시경.

여기에 쯤 있을 때에 도로 쪽에서 작은 큰 소리가 들리기도 하고, 경찰 소리가 들리기도 해서 모두들 무슨 일인가 하고 갸우뚱거리기도 했다.
나중에 돌아와서 보니, 경찰 버스 벽이 2대씩으로 배치되었고, 전투 경찰 부대의 수가 더 늘어났더랬다.

덕수궁 3번 출구 앞쪽으로 다시 돌아왔을 적에는 시민들이 무료로 촛불을 나누어주었다.
어떤 의미였을까.


오후 9시 2분.




덕수궁 옆.




...




촛불.




촛불.




촛불.




촛불과 서울프라자호텔.



거의 막 다다른 듯했던 때에 임시 분향소가 보였다.
줄을 서지 못하는 시민들을 위해 또 다른 시민들이 직접 마련한 임시 분향소에도 또 줄을 설 만큼 그 행렬은 거대했다.





대한문 옆 임시 분향소.



드디어 대한문이 보였다.
사람들은 가득찼고, 촛불과 국화꽃을 든 시민들이 보였다.

여기가 바로 23일 당일에 경찰이 방패를 들고 막아섰던.
바로 그 장소였나보다.


대한문 앞 노무현 전 대통령님 분향소.




촛불과 국화꽃.



조문을 하고 나왔다.
발이 쉽게 떨어지지 않아 잠깐을 그 곳에서 머물렀다.
경찰은 조문을 하고 가면 되지 왜 그곳에 모여 있느냐며, 집회 가능성이 있어 전경을 배치한다고 했찌만,  많은 시민분들께서 왜 그곳에 머물고 심지어는 자리를 지키고 계시는지 적어도 나는 이해가 되었다.

길을 나와 촛불을 들고 서성이다 12번 출구 앞에서 경찰들의 함성을 들었다.
흠칫했지만, 무슨 일인지 눈으로 봐야겠다 싶었다.

길을 막은 전경들과 왜 막느냐며 서 있는 시민들이었다.
네트에서만 보던 장면이 눈 앞에 있었다.

격앙된 시민들은 경찰을 이해하지 못하고.
경찰들은 시민들을 무력으로만 잠재우려 하고.

오늘만큼은 조문을 하고, 조용히 집에 가고 싶었다.



약 4시간 가량을 기다렸지만, 후회하지 않을 하루였다.
아니, 어쩌면 가까운 미래에 이 날 조차도 봉하마을에 가지 못한 것을 후회할 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해서 다시 지하철을 탄 시간은 10시 30분 경이었다.


12번 출구에 촛불을 놓는 시민들.





시계를 찍으려 했는데... - 서울시청역 12번 출구.



아래는 동영상.













아래는 당일 서 있던 줄은 다음 지도를 통해 그어보았다.





2009.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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