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E
감독 앤드류 스탠튼 (2008 / 미국)
출연 벤 버트, 프레드 윌러드, 제프 갈린, 시고니 위버
상세보기


상상력의 극치.
부드러운 로봇을 표현한 그 첫번째 영화.


8월에 개봉한 영화를 나는 이제야 보았다.
뭐, 전에 밤샘을 하다가 보기는 해서 벌써 날짜가 꽤 지나 있는데, 한번 더 보는 바람에 이제야 감상을 쓰게 된다.

월이.
상상력의 극치라고 표현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은데, 그건 너무 당연한 얘기여서 여기 남기기도 뭐하다.
원래 픽사의 애니들은 늘 상상력의 정점을 보는 듯한 영상을 보여주곤 했다.
다른 영화나 애니들이 그렇지 않다는 것은 아니나 우리가 상상하기 어려운 점을 보여준다는 것.
그것이 픽사의 매력 아닐까.
디즈니, 드림웍스 라는 쟁쟁한 경쟁사가 있지만, 이들과 픽사가 완전히 독립적일 수 있는 이유는 바로 그 부분에 있다고 생각한다.
대표적으로 '슈렉'만 봐도 굳이 영화를 끝까지 보지 않더라도.
아니, 그냥 몬스터 이야기라는 점만 알고 있으면 시나리오 정도는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늘 보던 이야기이고, 어렸을 적부터 동화에 나오는 이야기기에 어색하지 않은 것이다.
슈렉은 단지 그 아름다울 법한 이야기에 슈렉이라는 녹색 괴물을 붙이고, 그 주변에 아기자기한 캐릭터들을 붙여 꾸민 것 정도로 해석이 가능하다.
물론 슈렉 그 자체도 영화로서의 가치는 충분했다.
슈렉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니므로.

월이.
월이도 마찬가지로 기술에 의존한 인간들이 로봇에 지배당한 것이라는 큰 틀을 갖고 출발해서 내용은 뻔했을지 모르지만, 이런 표현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
그 점에 점수를 주고 싶다.
사실 이런 테마로는 수없이 많은 영화와 책들이 있지 않았나.
친구 녀석이 이것을 보고, 마치 매트릭스와 비슷하다라고 평을 했는데, 틀린 말이 아니다.
또 그만큼 그 기술이 인간을 점령한다는 이야기는 이제 애니메이션에도 나올만큼 식상한 주제가 되었다는 것을 증명하기도 하고.
하지만, 표현에 있어서 매트릭스나 다른 영화들은 온갖 철학 따위를 갖다 붙여서 보통 사람들은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영화를 만들어 버렸더랬다.
왜 공각기동대는 3번은 봐야 내용을 이해한다고 다들 얘기하지 않나.
그리고 실제로 주위를 둘러보면, 여전히 매트릭스 3편을 모두 보고서도 무슨 내용인지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많이 보고 있다.
월이는 같은 내용을 어린 아이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한.
그런 영화가 아니었나싶다.
역시 로봇이 인간의 전유물인 '감정'을 갖는다는 얘기 또한 늘 보았던 식상한 주제이다.
그러나 이 역시 월이에서는 독특하고 신선한 표현을 주어 보는 내내 눈을 뗄 수가 없었더랬다.

얘기가 길어지는데..
여하튼.


영화를 볼 때 대부분의 포인트는 뒤에 두기 때문에 앞에서는 살짝 집중을 흐리다가 뒤에 가서 바짝 정신을 차리고 보는 경우가 많은데.
월이의 포인트는 앞 부분이었던 것 같다.
청소로봇 월이가 700년 동안 고독히 청소를 하면서 갖추어 간 인간의 감정들과 생각들을.
우리 인간들이 바라보는 느낌은 묘하고도 묘하다.

월이가 반지를 발견했을 때, 반지는 버리고 케이스만 남기는 장면.
우리가 시덥지 않게 생각하는 철로 된 원판(?)을 챙기는 장면. (월이는 모자로 생각함.)
같은 물건을 관점에 따라 다른 가치를 넣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인가 싶기도 하고.
일상을 다시 둘러봐야 하진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월이가 청소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바퀴의 틀(?)을 꺼내어 걸고, 작은 전구들로 된 라이트를 켜고, 아이팟의 동영상을 틀고, 가방에서 수집품들을 꺼내 정리하는 장면은 인간의 그것과 상당히 유사하다.
아마 그 일상을 월이는 700년이나 반복했을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월이는 아이팟의 영상에 또 한번 젖어서 손에 깍지를 끼고, 외로와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아마 잘은 모르겠는데.
친구 녀석의 말도 그러하고, 내가 월이를 보면서 감탄을 지어내고 공감을 하게 되었던 건 저 녀석과 상당히 유사한 내가 있기 때문 아닐까 싶었다.
아니, 아이팟을 700년이나 보았다는 건 수 없이 많은 반복 재생이 있었다는 얘기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상에 젖는다는 것.
쉽지 않은 일이다.
내가 그러하듯이.
봤던 거 또 보고, 또 보고. 들었던 것 또 듣고, 또 듣고.

이후에도 여리고 멍청하고 겁이 많고, 그러면서 호기심이 많은 월이를.
나는 가서 혼을 내주고 싶었더랬다.
별 것도 아닌 것에 고민, 고민을 하고.
우유부단해서 이리저리 못하다가.
이내 하고 말지만, 사고로 이어지는.
뭐, 그런.



시간이 흘러 이바(원래 이름은 '이브'이지만, 난 월이가 부르는 '이바'가 더 정겹다.; )가 왔을 때.
첫장면에서 휘리릭 날아서 고품격의 비행을 보여주는 때에는 인간인 나도 반하게 비행을 그려 아름다운 장관을 연출했다.


딱딱하기만 한 로봇과.
황폐해진 지구가.
어찌 그리 아름다울 수 있는가.



월이라는 영화는 그러면서, 인간 연애사를 한번에 일축시켜 보여준 것은 아닌가 싶었다.
내 SF영화는 골라 좋아해서 나왔던 로봇을 분석하기도 하고, 인상적인 로봇들이 몇 있었는데, 다 잊어버리고, 이번에 이바와 월이만 머리 속에 남을 것만 같다.


아, 월이와 이바와 만나서 월이의 수집품들을 이바에게 보여줄 때의 장면도 참 인상적이었더랬다.
뭐랄까.
월이가 넘을 수 없는 이바와의 장벽에 월이가 뻘뻘거리는 모습.
그러면서도 다가가려고 무척이나 애쓰는 장면은 찡하게 만들기도 했다.
뭐, 그러면서 서로 피드백을 주고 받는 장면도 인상적이었고.

라이타 불에 서로 신기하는 모습이 그 중 가장 멋지지 않았나 싶다.
월이도 보지 못했고, 이바도 처음 보는 라이타의 모습에.
둘이 두 눈 휘둥그레 뜨고, 쳐다보는 모습이.


이바가 떠나는 우주선에 월이가 얻어 타서 가는 장면은 애니메이션이 이리도 아름다울 수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게 한 장면이었다.
월이는 태어나서 아마 별을 처음 보았을 텐데, 별을 보고 이바한테 '저거봐! 신기한 별이 보여.'라고 외치는 듯한 무언의 대사는 그냥 '아..'하는 감탄만을 지어냈다.
감탄이라고 보기에는 아닌 것 같은데, 마땅한 대체어가 생각나지 않는다.


월이 영화에서는 정말 아름다운 장면들이 많았던 것 같다.
로봇이 나오는 애니메이션 하면 나는 당장에 공각기동대, 에반게리온, 건담, 애니 매트릭스 따위밖에 떠오르지 않고, 우주로 배경한 것은 플라테너스? 정도.
그 중 로봇이 나온 애니메이션 치고, 아름다운 장면은 일체 기억에 남지 않았다.
모두 내용이며 색감 자체도 철학적으로 그리려 하기 때문에 이해조차 쉽지 않고 말이다.

로봇이 나오는 영화를 이렇게 아름답게 그릴 수 있다는 점에 놀랬다.
월이 영화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은 아마 월이와 이바가 함께 우주에서 비행하는 장면이 아닐까 싶다.
어쩌면, 그것은 비행이 아니라 '춤'일지도 모른다.
춤.

월이는 소화기로, 이바는 자체 동력원으로 우주를 비행하는 모습.
아마, 그건 하늘을 날고파하는 인간의 영원한 꿈을 애니메이션으로 실현한 것인지도 모른다.
같은 내용을 인간 주인공으로 하여도 아름다운 장면이 되었을 테지만, 인간은 연기할 수 없는 장면을 로봇들이 대신 그려주어 보는 이로 하여금 만족감과 행복감을 들게 한다.


뒤로 가서 기술이 인간을 장악하고, 로봇이 인간 위에 있는 이야기는 별로 할 얘기가 없다.
매트릭스 주구장창 세,네번을 보면서 대충 알게 되었으니까.


벌써부터 픽사의 다음 영화가 기대된다.
그리고 그 전에 놓쳤던 내용만 알고 있는 영화들.
니모를 찾아서, 카, 라따뚜이 등을 되새겨 보아야 할 때다.

오케이.




다른 장면은 캡쳐할 것이 없고, 스페셜 땡스에 스티브 잡스가 눈에 띄어 캡쳐해보았다. :)





2008.12.08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