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바이트라는 표현에 대해 검색해보니, '부업'이란 단어로 순화하란다.
'아르바이트'는 독일어라고..
일본에선 이를 '바이또'라고 하며, 미국에선 '맥잡'이라고 한단다.
'부업'은 좀 어색한데;



일을 시작했다.
충전의 시간은 1년이면 족했다.

오랜만에 아침자락에 일어나 6시에 9500번을 타는 느낌은 묘했다.
물론 한강을 보기 위해 왼쪽줄에 앉았더랬고.

예전을 떠올리며 시간을 맞춰 갔는데, 그보다 무려 1시간이나 일찍 도착해 당황했다.
예전에 기억으론 6시 30분에 차를 타면 지각이 확실했고, 20분 안쪽에는 타야 8시 30분에 강남에 도착할 수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그 시간대에 정류장에서 줄이 길게 늘어서 있고.

그런데, 이번엔 그렇지 않았다.
아부지께 이 얘기를 하자, 방학이라서 그런 것 같다라고 하셔서 그런가보다..라고 하려고 했는데, 작년에 일을 할 적에는 여름 방학이었는데??
내 추측에는 경기 불황으로 출근하는 사람이 없다더니, 그 영향이 강남가는 버스까지 온 것은 아닌가 싶다.
인천의 공단 지역에선 이미 일감이 없어 가동을 멈춘 공장이 한둘이 아니고, 많은 사람들이 출근을 미루고 있다.
하더라도 일주일 교대 근무.
혹시 그 영향이 9500번에 온걸까?



여하튼, 역시 여기 회사의 일처리가 늘 그렇듯 가서 3시간은 멀뚱멀뚱거리다가 일을 받았다.
일이 없으니 가라는 이사님의 말씀에 조금 황당했으나 차장님께서 붙잡으셨다. ;


오랜만에 간 고객만족본부는 새로왔다.
불황이라고 하지만, 여기 회사는 프로젝트 몇 건을 거하게 따내서 오히려 반대로 사원을 모집하고 있는 상황.
일하던 아르바이트생들이 취직해서 신입사원이 된 사례도 볼 수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사무실을 터서 많은 사람들이 들어갈 수 있도록 바뀌었고, 이사님과 부장님, 과장님과 함께 일하던 오순도순(?)하던 모습은 옛날 모습일 뿐이었다.
지금은 사원들만 20명 이상 일하는 것 같았으니 말이다.

당시에 같이 일했던 과장님들은 나를 보고 신기해 하셨더랬다.

 "어, 너. 그 때 그.. 맞지?"

뭐, 이런 정도의..;;

지금은 이사가 되실 부장님께서 검증된 알바생이라고 할 때엔 뭔가 뿌듯도 했다.
그러면서 예전에 PC 작업할 때 무지 고생했다고 하실 땐, 옛적 생각이 떠오르기도 했고.


회사의 일처리는 그대로였다.

엉.망.이었다.
중구난방식의 체계도 엉성하고, 조금만 정리해서 진행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지금도 여전했다.
조금만 신경 쓰면 간 곳을 두세번 갈 일은 없을테니까.


이번 작업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작업.
PC와는 거리가 다소 있고.

우선, 아부지께 들은 바로는 'RFID 태그 부착 작업'.
난 이 RFID라는 것이 IT 매체 뿐만 아니라 경제 신문에서도 여러번 나왔었고, 실제로 미국, 유럽 등의 선진국에서는 이미 테스트 기간을 거치고, 사용중에 있었기에 다들 아는 줄 알았는데.
뭐, 어려운 건가보다.

여하튼, 나는 RFID를 내 눈으로 직접 보고픈 생각을 예전부터 갖고 있었으므로 일을 하기 전엔 작게 설레이고 있었다.


일의 방법은 어렵진 않다.
RFID가 내장된 빨간 플라스틱을 노란색 철고정대에 장착하고 조립을 끝낸 후, 우체국에서 쓰이는 파레트의 오른쪽 상단에 볼트 같은 것으로 고정하면 되는 것.
좀 유의할 것이 있다면, 각 RFID 태그당 바코드 번호가 등록되어 있어 스티커가 부여되는데, 이 역시 파레트의 정해진 위치에 붙여두어야하고, PDA로 어떤 파레트에 이를 붙여두었다라고 등록을 해야한다.
하여튼, 이 회사는 우체국이랑은 떼어낼 수 없는 회사인가 보다. ;

방법은 위에서 네다섯줄에 끝난 만큼 그리 어려운 방법은 아니다.
옆에서 20분 정도 붙잡고 얘기해주면 끝날 분량.

문제는 속도와 숙련도.
조립의 단계에선 필요한 공구와 볼트, 와셔 등을 주머니에 챙겨두면서 정해진 위치와 순서대로 작업을 해야하고.
PDA의 등록 단계에선 이전에 파레트에 부착한 스티커를 떼어내고 그 위에 새로 부여된 스티커를 붙이는 작업에서 좀 헤매이게 되는 것 같았다.
물론, PDA를 다루는 요령도 알아두어야 하지만.

위의 문제가 해결되면, 다음은 양.
쇠덩어리인 파레트가 수백, 수천개.
그 중에 태그를 부착하지 않은 것들을 골라내어 부착하는데, 수십, 수백개.
하루 분량은 약 60여개 정도 되는 것 같은데, 쉽지는 않았다.

마지막 한 문제가 더 있다면, 낮은 기온.
집중국이나 물류센터가 이름 그대로 온갖 물건들이 들어오고 나가고 하는 곳이어서 사방이 트여 있고, 때문에 추위는 더욱 강추위로 몰아쳤다.
게다가 다소 섬세함이 요구되는 일이기에(그냥 물건을 들고 옮기는 것이 아니기에) 장갑을 끼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어서 손을 더 아려왔던 것 같다.
첫날에는 자켓만 입고 갔다가 얼굴에 열이 올라오는 것 같아서 다음날부턴 4겹 정도의 옷을 껴 입고 갔더랬다.



작년에 일을 하면서 절실하게 깨달은 건, 절대 무.리.할. 필요가 없다라는 것.
더더욱이 나는 신입사원이 아니라는 것.
무리해봐야 돌아오는 건 더 많은 일의 양이라는 것.
일단 내 몸이 편하고 봐야한다는 것.

정도가 되겠다.
작년에 일할 적엔 몸 안가리고 뛰어다니고, 안되는 것은 되게하라는 주의였더랬기에 정말이지 최선을 다했더랬는데, 지금에 와서보면, 참 멍청했다.
내 무슨 신입사원도 아닌데, 적당히 열심히 하면 되는 것이고, 내 몸과 권리는 지켜가야 하는 것이 맞는 것이지 무작정 내 몸 뱉어낼 필요는 없다는 것을 알았다.
게다가 그리 열심히 해봐야 돌아오는 건 더 많은 일감일 뿐인데 무얼.
아, 장점이 있기는 했다.
과장님과 부장님의 신뢰를 얻었다는 것. :)


어쨌든, 그래서 이번에는 몸 불살려 할 수는 있을 것 같은 일들도 그냥 넘기면서 했다.
예를 들어, 파레트라는 것이 쇠뭉탱이인데, 빼곡하게 그것들이 들어서 있으면 안쪽에 있는 태그가 부착되지 않은 파레트는 다가가기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이전 같으면 위를 타고 넘어가서 부착을 하고, 서커스쇼를 했을텐데, 지금은 그냥 그러다 다치면 나만 손해지. 알바생은 회사 보험에도 안들어 있어.라면서 그냥 무시했더랬다.

그리고 장갑을 낄 수 있다면, 내 손이 우선이므로 장갑도 열심히 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에 상처들이 난 것은 어쩔 수가 없다.; )
앉을 수 있으면 눈치 보지 말고, 그냥 앉고.
마실거리나 먹을거리 있음 이 역시 눈치 볼 거 없고.
눈치 본다고, 급여가 안들어오는 건 아니니까.
일을 못하는 것도 아니고.


적당함이라는 것이 어려운 것이겠지.
너무 선을 넘어가면 배짱만 가득한 배짱이가 되는 것이고.
너무 반대로 넘어가면 일밖에 모르는 개미가 되는 것이다.

그래도 나는 이왕 하려면 배짱이가 낫다는 편.
배짱을 부릴 수 있을만큼 부리고, 적당히 꾀 피우지 않고 일도 하고.



여하튼, 이번 프로젝트에 마무리 단계에 내가 투입된 것이어서 이번주까지만 이번 일이었고, 다음주부턴 또 다른 일이 시작된다고 한다.
무슨 일을 할 지는 나도 모른다.
(과장님도 모르셨다.; )

이번 일은 정말 재미가 없다.
사실 고되고, 피곤한 정도는 그 때가 심하면 심했지, 약하진 않았다.
그 땐 정말 고생다운 고생이었더랬고, 육체적, 정신적 스트레스를 둘 다 받는 고된 작업이었다.
원래 PC를 다룬다는 건 정신적 스트레스만 있는 것 같지만, 삼별의 구형 컴퓨터 케이스를 뜯는 일은 아주 고되다. ;
무슨 케이스 한번 뜯을 때마다 온갖 힘을 다 주게 만들었는지 모르겠다만, 여하튼.

다만, 뭐, 그 땐 추운게 추운건지, 더운게 더운건지도 몰랐더랬고, 당연히 힘든게 힘든 건지도 전혀 몰랐더랬다.
그래서 사실 지금의 고된 것이 그 때보다 더 한 것인지 감을 찾기는 참 어렵다.
하지만, 재미가 없는 것은 분명하다.
같은 일은 무한으로 반복하고 또 반복한다는 것이 영 재미가 없고, 의욕도 나지 않는다.
신기한 것도 없고.
한가지 있다면, 우체국 집중국에서 소포들을 분류하는 기계들의 모습이랄까.
작년에도 그렇게 실컷 봤것만 여전히 신기하긴 하다. @@;;



일을 하면서 주변서 무슨 일을 하냐고 물으면 참 해줄 말이 없다.
그래서 나름대로 머리에서 짜낸 말이라곤.
 '강남에 출퇴근하는 컴퓨터 관련 일'
이라는 말이었다. ;




회사는 양재역을 넘어가서야 내린다.
사진은 출근 첫날에 7시 11분에 찍은 강남역 삼별 본사.

캄캄할 적에 온갖 층의 불이 켜진 건물의 모습을 보니, 또 다른 느낌이 들었더랬다.



동집.

동서울 집중국을 줄여서 동집이라고 한다.
처음엔 나도 뭔가 싶었지.

서서울 집중국이었던가는 가본 적이 있는데, 동서울은 처음이었더랬다.
그리고 저번주 내내 여기서 일을 했고.

위의 컨베이어 벨트가 움직이면서 소포들을 자동으로 분류한다.
난 여전히 정말 신기한 터.

사진의 왼쪽 하단에 보이는 것이 파레트라는 것.
차갑다.



같은 장소에서 오른쪽.
컨베이어 벨트는 물류차가 올 때만 움직이는데, 낮에는 물류 트럭이 잘 오지 않아서 움직이는 모습을 보기 어렵고, 야간에는 쉴 틈 없이 움직인다.
약간의 소포가 분류된 모습이 보인다. :)

사진으로 많은 걸 담고 싶었으나 일을 하면서 틈이 잘 나지 않고, 손이 더러워서 미라지를 꺼내기 쉽지 않았다.
위 사진은 퇴근하면서 1층에서 바라본 지하1층의 모습.




2009.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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