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께서(;;) 오랜만에 내 PC 앞에 앉으셨다.
1시 자락에 퇴근하고 오셔서는 고기가 없어 야식을 안드시리라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고, 남은 나물과 포도주로 야식을 대신하셨다.
뭐, 나는 손을 덜어서 좋았는데, 마지막 커피를 만들다가 엄마는 여행지를 찾아야한다 하시면서 내 방으로 냉큼 들어가셨다.
안방 PC는 나래가 인강을 보고 있었더래서.

엄마는 나에게 물어보지도 않으시고, 내 PC 앞에 앉으셨지만, 나는 그런가보다 해야한다.
나는 얼른 메신저의 상태를 자리비움 상태로 바꿔두고 왼쪽 모니터에 떠있는 대화창과 메신저를 아이튠즈로 가렸다.
그리고 익스플로러를 띄워드리고, 네이버 직접 치셔야되요~ 라면서 커피에 물을 타러 부엌에 다녀왔다.

하지만, 당연히 엄마는 네이버가 왜 안뜨냐며, 흰 페이지에서 기다리고 계셨다. ;
내 주 웹브라우져는 당연히 파이어폭스, 불여우이고, 익스플로러는 우리 학교 홈페이지나 인터넷 뱅킹 사이트와 같이 다양성을 완전히 무시한 대한민국 웹사이트를 이용할 때에만 사용하므로 홈페이지를 지정해두지 않았다.
오히려 about:blank이 훨씬 더 로딩이 빠르기 때문.
(이제는 웹표준이라 하지 않고, '다양성'이란 표현을 쓰기로 했다.)

나는 엄마께 네이버 직접 치셔야해요..라고 다시 말씀드리면서 커피를 엄마의 손에 닿을 곳에 두었고, 엄마는 별표시, 즐겨찾기를 누르셨다.
당연히 아무것도 없다.

아들은 직접 쓰여야해요..라고 말씀드렸고, 엄마는 주소창에 직접 한글로 '네이버'라고 치고 계셨다.
그도 그럴 것이 안방 PC와 매장 랩탑에는 네이버 툴바를 설치해두어서 한글로 타이핑해도 왠만한 사이트는 접속 가능하도록 만들었기 때문.
그러나 내 PC의 익스플로러는 백색의 익스플로러 모양새를 유지하고 있다.

당연히 네이버가 뜰리 없고, 엉뚱한 페이지가 나와 나는 키보드를 붙잡고 naver.com을 쳐 접속했다.
엄마는 "이거는 영어로 쳐야돼?"라고 하셨고, 아들은 말을 아꼈다.
엄마가 알게 모르게 편하시라고 엄마의 PC에 세팅해둔 것들을 일일히 설명하기엔 구차하기 때문이다.


네이버에 들어가는 동안 몇분이 흘렀는지 모르겠다.
엄마는 아들에게 물으셨다.

"왜 이렇게 복잡하게 살어?"



네이버에 접속해 하나투어에 접속하셨고, 해외 여행지들을 살펴보셨다.
지리에 까막눈이신 엄마는 호주가 유럽이 아니냐고 물으시기도 했고, 어제 위성 지도까지 펼쳐서 보여드렸다고 아들은 대답했다.
그러자 엄마는 속옷 아니면, 모르시겠다는 답변을.. (...)

한참을 뒤적거렸지만, 300만원 안쪽, 예약인원 충분, 날짜는 6일.
무엇보다 복잡한 것을 싫어하시는.
즉, 유물, 유적 따위 보려는 것도 아니시고, 휴양지를 가는 것도 아까우신 엄마의 취향을 맞춘 곳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물론 어제 오전에 나도 나름대로 머리를 짜내어 몇개 나라를 걸러내었는데, 예약이원이 부족하여 목요일까지 두고 봐야 안단다.

아들은 옆에서 나름대로 비교를 해가며, 일정을 보아가면서 태국이 잘 사니, 홍콩이 잘 사니? 와 같은 엄마의 질문에 대답하면서 비교를 해나갔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선택권은 엄마가 갖고 계신 것이고, 결정도 엄마의 몫이니 나는 비교와 대답만 할 뿐, 결정을 엄마의 몫인 것이다.
하지만, 엄마는 요거는 이래서 안돼, 이거는 이래서 안돼..라면서 무의미한 클릭만 하고 계셨고, 아들은 그러지 말고, 싱가포르가 어떤 나라인지 검색해서 사진이라도 보라고 권유해드렸다.
태국이 어떤 나라인지, 정말 못 사는 나라여서 엄마 취향이 아닌지, 홍콩과 싱가포르가 왜 비교되는지 직접 눈으로 보고 결정을 하셔야 한다고 말씀드리기도 했지만, 엄마는 머리만 아프고, 엄마는 단순해서 비교 같은 거 못하겠고, 복잡하기만 하다고 같은 답변만 하셨다.
결국 무의미한 클릭질은 계속 되어서 결국 한시간이 지났지만, 아무 것도 결정하지 못한채 엄마는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머리만 아프다는 말씀만 하시고는.

그리곤 안방에 가셔서 어떻게 해야하냐고 아부지께 다그치셨다.
아빠도 피곤하셔서 잠에 드려고 하시는 것을.

그래서 내가 말씀드렸다.
내일 싹 다 정리해서 문의해서 프린트 해놓겠다고.



결국 나는 가지도 않는 여행지를 알아보고 정리하는 일을 맡았다.

늘 이런 식이었지.
엄마는 늘 복잡하고 왜 이리 생각이 많냐고 나에게 그러시지만, 정작 나는 엄마가 머리 아프다고 하시는 일을 맡아서 하게 된다.
엄마가 사업자등록증을 받으시고, 부가가치세, 재산세 등의 세금 처리를 할 때에도 세금에 까막눈인 나는 인터넷과 책을 뒤적거리며, 엄마의 세금 담당을 도맡았다.
오히려 엄마는 본사에서 교육까지 받아오시고는 내가 물어보는 질문에 아무 답변도 못 해주시고, 몇일이 지났는데도 버벅거리냐며, 오히려 다그치셨더랬다.

나중에 시간이 흘러 어느 정도 익숙해졌을 때 쯤.
망할 엑티브X가 PC를 먹통으로 만들어 잔뜩 화가 들었을 때에.
엄마는 빨리 세금 내야한다고 하셔서 설명도 하지 못하고, 혼자 분통이 터졌던 적도 있었더랬다.

시간이 더 흘러 이제야 부가가치세가 무언지, 재산세가 무언지 대충 감이 왔나 싶을 때에.
엄마는 연줄이 닿은 세무소를 알아서 2009년부터 나는 세금 문제에서 손을 놓게 되었고, 지금까지 화일로 년도별 분기별로 자알 정리해둔 화일을 그 쪽 세무소에 전달했다.
다만, 뿌듯했던 건 그 쪽에서 아들이 세무 쪽에서 공부하냐는 말을 들었을 때, 이렇게 깔끔하게 정리한 사람은 처음 봤다고 했을 때 정도 뿐이었다.
그래서 그나마 그동안 무언지도 모르고 계산기 두드려가며, 네트를 뒤적거리며, 헤엄쳤던 것이 다행이다 생각했다.



내가 복잡하게 사는지.
만약 복잡하게 사는 거라면, 그게 특이한 것인지.

가장 이해받아야 할 어머니께.
늘 아들은 특이하단 말을 듣는건 영 마음에 내키지 않는다.



2009.02.11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