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제목은 '어머니. 돈. 음악.' 으로 시작했다.
아무래도 혼자 구시렁거리는 장문이 될 것 같아서 제목에는 고민 없이 시작해볼란다.


어느새 수요일 새벽이 되기는 했지만, 여하튼.

일요일 저녁.
집에 가는 길에 전화를 눌러 당구가 땡긴다는 핑계로 친구 녀석을 불러냈다.
내가 먼저 전화하는 경우는 드문가 싶기도 했다.
전화하고 친구 녀석이 오길 기다리는 와중에도 내가 과연 오늘의 고민 얘기를 꺼낼 수 있을까가 의문이었고, 꺼내야만 할까가 또 다른 고민이었다.

당구가 땡긴다는 핑계는 사실 핑계가 아니기도 했는데, 어쩌면, 머리가 식지 않을까라는 쓸떼없는 바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쓸떼없다고 한건 당연히 식지 않는다는 걸 친구 녀석에게 전화하기 이전부터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혹시 식는다 하더라도 잠깐의 임시 방편일 뿐일테지.

여하튼, 이 날은 지독한 날이었다.
아침에 어무니와 마주칠 용기가 나지 않았는지 아니면, 그냥 마주치기 싫었는지는 몰라도 자는 척을 하고는 1시에 출근하실 때까지 방문을 닫고, 네트를 돌아다녔더랬다.
빠에 가는 와중에 영문을 아느냐고 물어보는 사람을 만나 싱숭생숭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진지하게 얘기를 들어버렸고, 덕분에 나는 지각을 하고 말았다.
또 가는 와중에 예전 학원의 아는 녀석을 만나 옛날 생각이 솟아 하필이면, 왜 오늘이야..라며, 구시렁거리며 길을 걸었고.
빠에 도착해서는 스윙을 하면, 기분이 나아질꺼라 싶었는데, 택도 없음을 알고 오히려 그 재즈 음악들이 영 듣기 불편해서 나가고프기도 했고.
그래도 꾸역거리며, 손을 잡았지만, 역시 아직은 머리로 추니, 스텝이 꼬일대로 꼬여버리더라.
이내 오늘은 아니다 싶어서 그 이후로 끝까지 앉아만 있었다.

또 아직 덜컸나 싶을 정도로 티를 내어버렸는지, 얼굴에 쓰여 있었는지.
역시 어른은 못되고, 나는 어른아이로 묻혀버렸는지 싶어 그거 나름대로 또 다른 스트레스로 머리 속은 뒤죽박죽이지 않았나 싶었다.

당구장에 가서 큐대를 들었을 처음에는 좋다 싶었다.
하지만, 예전에 음악이 그렇고 그랬듯이 잠깐이었다.
10분이 지나고 나자 다시 머리는 무거워져 오히려 원하는대로 굴러가지 않는 공에 또 다른 스트레스는 쌓여갔다.
친구 녀석도 오늘은 날이 아닌 것 같다며, 위로 아닌 위로도 해주었다.
그래도 오기는 있어서 막판 3분을 남겨두고, 50점을 날려 목표한 120점을 쳐버렸다.
나도 썩 몹쓸 인간은 아닌가보다 했다.


당구장을 나가면서도 고민이었다.
이거 내 고민거리 한번 꺼내봐 말아.
꺼내봐야 소용 없단 걸 잘 알았지만, 그래도 내 머리 속에서 뭔가 나아지지 않을까 싶었다.
헌데, 친구 녀석이 오히려 물어볼 말이 있다길래 옳거니 하면서 나는 치킨을 꼭 먹고 싶다면서 호프집으로 향했다.

학교 얘기, 일상 얘기, 나하고는 관계 없는 연애 얘기들을 꺼내었지만, 내 얘기는 쉽사리 나오지 않았다.
친구 녀석이 물어봤다.
치킨이 꼭 먹고 싶다더니, 왜 안먹느냐고.
아껴 먹는다고 둘러댔다. ;


그리고 이제 막 얘기를 꺼내보려 할 때, 한 녀석이 연락을 받고 합석했다.
내 스스로 진짜 친구 녀석들이다 싶은 녀석들이니, 꺼릴 것이 없는데도 나는 그 자리에서조차 얘기했지만, 사실 알게 모르게 내가 벽을 두지 않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잠깐 멈칫하며, 내 얘기를 다시 목구멍에 넣어두었다가 이내 꺼내들었다.

사연은 이랬다.


1. 아들이 2009년부턴 용돈을 받지 않겠다고 작년 12월에 선포(?)했다.

2. 아들이 2009년부턴 통신비를 부담하겠노라고 같은 시기에 선포(?)했다.

3. 아들이 2월 말까지로 예정된 PC 유지보수 아르바이트를 뛰었으나 회사에서 진행중이었던 작업이 변경되면서 예정보다 아르바이트가 일찍 끝나버렸다.

4. 고민이던 찰라에 빠 아르바이트의 자리를 메우기로 하면서 비록 계획에는 크게 어긋났으나 어쨌든, 고민은 일단락되었다.

5. 엄마께서 화장품을 거의 다 쓰신 외할머니를 보면서 측은해 사드리고 싶지만, 자식들이 먼저더라..라는 말씀을 하신다.

6. 아들은 머리 속에서 계산을 끝낸 뒤, 다음 달에 살 예정이었던 전자 기기와 음반을 포기하고, 어머니께 아르바이트비가 들어오면, 화장품비를 드리겠노라고 대답한다.

7. 시간이 흘러 아들은 가계부 정산에 들어가자 생각보다 빠져나간 금액이 많았다는 것을 발견한다. 갑작스럽게 용돈이 사라졌고, 근 1년간 만나지 않았던 사람들을 만나던 통에 이전에 남았던 돈이 사라졌고, 더군다나 한동안 다녔던 물리치료비와 통신비가 발목을 잡았음을 알게 되었다.

8. 하지만, 중간 중간 계획적으로 사용한 덕에 계산은 완료되었고, 어무니께 드릴 돈은 뺄 수 있겠다 싶었다.

9. 그러나 아들이 생각했던 금액은 5만원이었고, 어무니께서 생각하신 금액은 15만원이었다. ;

10. 계산에 착오가 생겼음을 알고, 어무니께는 계산 후, 나중에 드리겠다고 말씀드렸다.

11. 엄마는 후에 몇 번을 물어보셨고, 아들은 계산 후, 나중에 드리겠다는 답변을 그대로 드렸다.

12. 이 때, 이 '나중'이라는 말의 의미에 아들은 한달을 생각했고, 엄마는 일주일 정도로 생각하셨더랬다.

13. 2월 7일 토요일, 엄마는 같은 질문을 아들에게 던지셨고, 아들은 또 같은 답을 드렸다.

14. 그 계산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지금은 2월 생활 유지비 뿐이니, 2월 말이 되어서야 드리겠다고 답했고, 이후 엄마는 아들에게 비수를 꽂는 말씀들로 터지셨다.

15. 아들은 목 놓아 안드리겠다고 하는 것이 아니지 않느냐라고 했지만, 엄마는 이어서 곧장 출근하시고, 아들은 영문을 모른채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토요일 저녁.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처음으로 집 그 자체가 싫어졌고, 3시까지 방황을 한 후, 집에 들어갔다.
예전에도 방황이야 했었더랬지만, 그 때는 집이 싫었던 것이 아니고, 엄마와 나래를 감당해야 할 임시 가장으로써의 자리가 부담스러웠던 것이고, 그래야만 하는 현실에 괴리감을 느꼈던 거이었지 집이 싫었던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이 때 들었던 생각들은..

돈 문제로 모자 간의 관계가 이리도 쉽게 문제 생길 수 있겠구나 싶었고.

나의 어투나 어감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기도 했으며.

'나중'이라는 표현에 있어서 내 기준이 보통의 기준과 많이 다른 것은 아닌가 싶었다.

그 와중에 나는 스윙이라는 걸 즐기기 위해 빠에 가고 있었고.
(비록 아르바이트라고는 해도.)


여하튼, 사건 자체의 단편적인 문제는 잠깐의 생각 후, 쉽사리 정리될 수 있었고, 게다가 소식을 들은 아부지께서 일요일 오후 자락에 엄마의 기분을 맞추지..라고 하시면서 그냥 어무니께 10만원 드리면서 죄송했다고 하라셨기에 단편적인 문제 해결에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그런데 나는 단지 그렇게 마무리하기에는 싫었다.
또 이 날 머리를 굴리다가 그 동안 약 3년 정도의 사건들이 필름처럼 지나갔고, 이후 그 이전의 사건들이 또 다른 필름으로 지나갔다.



1. 고등학교 시절, 아들은 아부지의 부재를 처음 경험하면서 임시 가장의 역할을 맡게 된다.

2. 동시에 아들은 고등학교 생활이 형편 없었고, 어머니는 매니저급으로 맡는 첫 사회 전선에 뛰어드셨다.

3. 여린(지금 와서 나의 판단에 의하면) 성격을 지닌 어머니는 아부지의 부재에 힘겨워 하셨고, 아들은 그런 어머니가 힘드시지 않도록 늘 나름대로의 노력을 기해 어머니를 위로해드렸더랬다.

4. 어머니로써의 엄마라고 생각해서는 아들의 행동에 한계가 있음을 인지하고, '여자'로써의 엄마로 인식하고 진심으로 엄마를 위로해드렸더랬다.

5. 동시에 단지 부모님의 아들로써, 장남으로써 엄마와 나래를 부담하기엔 한계가 있음을 인지하고 빠른 인식 전환으로 나래는 엄하게 자식을 키우다시피 대했더랬다.

6. 시간이 흘러 아들은 학교 생활에 만신창이가 되었고, 비록 아부지께선 중국에서 얻은 것이 없었지만, 아부지께선 돌아오셨다.

7. 시간이 흘러 아들은 그 동안의 긴장들을 풀어 헤치자 피곤함이 몰려왔고, 더더욱이 그 동안 갖지 못했던 어머니로써의 엄마로 다시 인식 전환을 시도했으며, 동시에 그 동안 엄하게 대했던 나래에게 미안해 친근하게 다가간다.

8. 어머니로써의 엄마로 생각을 바꾸었으나 아들을 이해해주지 못하시는 어머니께 쌓였던 화가 터지면서 아들은 정체성을 잃어버렸다.



그리고 1년이 지난 지금.


결국 친구 녀석은 나에게 어무니의 아들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고 결론을 내리고는 이번 문제 자체에 대해서는 언급을 하지 못했다.
나도 해결책을 달라고 얘기를 꺼낸 것은 아니었으므로 거기서 고개를 끄덕거렸고, 여전히 머리가 가볍지 않아 여기에 글을 끄적거리고 있다.


어찌보면, 고작 10만원 문제였지만, 그리 간단한 문제는 아니라고 보였다.

나는 부모님께 당장에 돈은 드릴 수 있었지만, 후에 생활비가 없다면서 용돈을 달라고 하기에는 내 입이 더럽다고 생각했다.
부모님과 다른 친구 녀석은 가족끼리 그 정도는 이해해줄 수 있다고 했지만, 지금의 나는 여전히 받아들일 수 없다.
차라리 친구 녀석에게 돈을 빌렸으면 빌렸지, 엄마의 말을 살짝 빌리자면, 더 더럽고 치사한 것 같아서 그렇게는 못하겠다.



여하튼, 이랬다.

모르겠다.
이쯤되니, 더 이상 끄적거릴 수가 없어 쓰고 지우다를 반복하다 그냥 이대로 남겨둔다.



이공공구점공이점일일.

2009.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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