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김없이 이것도 사회 생활이므로 기록이 필요하다.
기록.
기억을 위한 기록.


스윙바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하는 일은.

여기저기 청소.
화장실 청소.
이것저것 정리.
쓰레기 정리.
설거지.
입장료 받는 카운터 역할하기.
음악 볼륨 조절하기.
블랙 커피 만들어두기.
식빵 구워 두기.
전기 끄고 켜기.
정수기 밑에 걸레 두기.
종이컵 채우기.
몇 안되는 식물에 물주기.

음..
이 정도인 것 같다.


어쨌든, 태어나 처음으로 컴퓨터를 벗어난 일이란 걸 해보는 것 같다.
지금까지 여러가지 일을 해보았지만, 결국 PC냐 외근이냐 정도의 차이지 결국 분류는 PC 유지보수라는 것으로 묶여졌더랬다.
나는 그걸 미처 몰랐던게지.

여하튼, 사실 위에도 혹시나해서 정리해본 것이지만, 정말 하는 일은 없다.
카운터를 보는 것이 막중한 임무이긴 하고 이제 조금 익숙해지는 것 같고.
시간당 사천원 받으며, 하는 일 치곤 객관적으로 쉬운 것이다.

그런데, 주관적으론 굉장히 어렵다.

일을 하면서 예전에 회사에 첫출근했던 것이 떠올랐다.
내가 일하려던 부서는 지하였는데, 처음 피부로 느끼는 어색한 분위기에 윗분들께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어벙벙하게 움직였더랬다.
아부지께서 첫날이니 부서만 알려주기 위해 지하로 같이 오시긴 했지만, 던져주고는 올라가셨더랬고, 그냥 두리번거리던 것이 내 일이었다.

첫 날이어서 어색하고 어벙거리긴 했어도 막상 일을 시작하고는 꽤 능숙했다.
단지 안타까웠던 것은 USB 메모리를 챙기지 않아서 그게 흠짓이었지만, 나보다 이전부터 있었던 신입사원들조차 갖고 다니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조금 충격이긴 했다.
어쨌든, 지금에 와서 얘기지만, 일을 시작하고는 신입사원들을 포함해 그 누구보다 능숙하게 했다고 자부할 수 있다.
그렇다고 일이 쉽거나 편할 것은 결코 아니었기에 더욱 자부할 수 있다.
실제로 신입사원과 동등한 일을 했었고, 첫날부터 야근으로 11시에 끝났기에 힘겨운 노동이었음도 감히 말할 수 있다.
그래도 마우스로 움직이는 윈도우즈는 조금 안다고 했던 게 도움이 많이 되어서 나중에는 PC 10대 이상을 한꺼번에 맡아도 콧노래를 불러가며, 즐기기까지 했으니 나도 참 가관이었다.


헌데, 컴퓨터라는 것.
기계라는 것을 떠난 나는 어벙함 그 자체였다.
컴퓨터라는 것을 접할 땐,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옆에서 힐끗힐끗 바라보고는 바로 내 것으로 만들어 능숙하게 했더래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자신감이라는 것이 충만했다.
하지만, 역시 아는 것이 없었는지라 겸손함(물론 이렇게 말할 수는 없다.) 정도도 갖추고 있었고, 나보다 윈도우즈 다루는 법을 모르는 신입사원이 가르치려 할 때에도 그럭저럭 맞짱구를 쳐주었더랬다.

이번 일을 하면서 사실 하는 것도 없지만, 생각보다 나는 어벙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최근 열심히 깨닫는 것은 정말 느리구나라는 정도.

그러면서 들었던 의문은 왜 PC를 다룰 땐 다른 사람들보다 빨랐을까 하는 점이 있기는 하다.
물론 내가 속한 그 집단은 굉장히 협소해서 감히 내가 어쩌고 저쩌고라고 언급할만한 단계는 아니지만, 어쨌든, 시야는 넓게 가져야 하고, 경험한 것은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봤을 때,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빨랐다.
그래서 조금 더 생각해보니, 그래서 내가 PC를 좋아하는 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나 혼자 무엇을 하려면 무얼 해도 당췌 빠르지 못한데, PC는 여러가지를 한꺼번에 처리할 수 있고, 무엇보다 빠르다.
애초에 내 손이 글씨를 쓰라고 만들어진 손은 아닌 것 같은데, 남들이 알아볼 정도조차 쓰지 못하면서 글 쓰는 속도조차 느리기까지 하다.
하지만, 이 울트라나브로 타자를 두드리면, 나름대로는 떠오르는 생각들을 정리하여 타이핑할 정도의 속도는 나온다.


잠깐.
너무 샜다;


어쨌든, 나는 이번 일이 쉽지만은 않다.
뭐, 그렇다고 어렵다고 징징거리는 건 아니다.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것일뿐.

조금 더 연장선에서 이럴거면 그냥 공대생으로 계속 남아서 컴퓨터나 만지고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든다.
근래에 들어 몇 안되는 고민 중 하나를 그냥 쓸떼없는 고민으로 치부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결정할 단계이지 않나라는 생각까지 든다.
우물 안 개구리는 되기 싫지만, 우물에서 보이는 하늘이 어마어마하게 클 것이라고 상상하는 것도 조심해야하긴 하나보다.



공허함.

공허함이 든다.
이렇게 써두고, 공허하다는 것이 정확하게 무슨 뜻일까 싶어 사전을 두드리니.

* 공허하다.
1. 아무것도 없이 텅 비다.
2. 실속이 없이 헛되다.

라는 뜻이 있단다.
나는 위 두가지 뜻 중에 두번째 의미로 이 단어를 떠올렸다.

스윙이라는 것을 접한지 불과 3개월째.
너무 말이 많다고 생각되지만, 기록은 기록이다.

스윙이라는 것을 하고나면, 여운이 없다.
여운이 없다.

내가 액션 영화를 그닥 좋아하지 않는 것들 중 하나는 여운이 없기 때문이고, 최신 가요를 좋아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 역시 여운이 없기 때문이다.
징..하게 울려주면, 남는 여운이 없다는 것이다.
이 부분은 나중에 끄적거릴 기회가 있을 것이고, 여하튼 스윙은 여운이 없다.
그냥 즐기고 나오면 끝이다.
나 오늘 뭐했지? 라는 생각까지 들 정도니, 내가 보기에 이 공허함은 꽤 큰 공허함이다.



항상 마무리가 문제다.
정말 마무리는 못하겠다.
게다가 아무리 혼자 끄적거리는 글이라지만, 근래에 들어 더 두서가 없다.


그냥 여기서 포스팅 끝.


2009.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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