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
사실 가계부를 적기 시작했던 건 내 자금부에 심각한 오류가 생기면서부터였다.
음반 구입 때문에 절실하기도 했지만, 더 심각한건 친구들에게 꿔준 돈을 제때 받아오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이거이 별거 아닌 것 같은데, 합해보면 어마어마한 양이라.
그래서 언젠가부터 이건 아니다 싶어서 적게 되었던 것 같다.
내가 하도 기억을 못해서 친구들이 기억했다가 돈을 돌려줘도 내가 이게 뭐임? 이라는 반응을 자주 보였고, 친구들은 지금도 빌려가면서 농으로 "어차피 기억 못하지~~"라고 놀린다. 쳇;

이렇게 말하면 "그럼, 아예 빌려주질 마."라고 말하는 사람이 꼭 있다.
우리 엄마가 그렇지. ;

얼마 전에도 친구 녀석이 4만원을 꾸어 갔다.
친구 녀석의 애인이 지방에서 인천에 온다는데, 돈이 없단다.
그래서 미안한데, 2만원만 꾸어달라는거지.
아니, 얼마나 돈이 없음 애인 때문에 돈을 꿔달란 소리를 친구한테 하겄나.
안그런가?
근데, 게다가 2만원이란다.
아니, 2만원이믄 영화 한편 보면 끝이겄다.
애인이 오랜만에 시험 끝났다고 오는데, 영화만 보고 집에 갈껀가?
커피도 먹고, 밥도 먹고 그래야지.
게다가 이 친구 녀석이 애인에게 소홀해서 애인이 화가 나 있는 상태였더랬다.
그럼, 잘 해주진 못해도 아쉽게는 해주지 말아야지.
그래서 내가 부담갖지 말고, 어차피 너는 나한테 갚을테니까 내 지갑에 있는 만원짜리 4만원 갖고 가라고 했다.
됐다고 하는 것을 그 녀석은 내 기록에 의하면 신용도 100% 이기에 거리낌 없이 빌려줬다.
아니나 다를까 아르바 시작하자마자 내 꿔간 돈부터 계산하고 있어 내가 뒤돌아서서 희미한 미소를 짓게 해주었더랬지.

돈이 좋은 것이 아니고, 좋은 것이라지만, 이 정도의 선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기록으로 까먹지 아니하면 되는 것이고.

더군다나 문제는 내가 치밀하다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내 친구 녀석들은 나에게 저런 말을 잘 하지 못하면서도 편안하게 하라고 자꾸 보채서 그런지 잘 말하기도 한다.
그리고 나는 돈을 꾸어줄 때 항상 용도를 말하라고 하기 때문에 이 녀석이 진심으로 말하는지 아닌지 보고 빌려준다.
그래서 내 친구 녀석들, 나한테 돈 꿀 때 단단히 각오하고 꾼다. ;


여하튼, 요래요래 산다.
요렇게 해도 만원, 이만원은 어떻게든 기억을 해도 천원, 이천원은 또 금새 까먹기 마련이다.
그래서라도 기록은 필요하다.

하여간.

엄마나 나래도 나한테 자주 돈을 꿔가는데, 엄마는 우연히 천원 꿔간 것까지 기록을 하는 나를 보고 혀를 내두르셨다.
나래 역시 이런 오빠를 잘 알기 때문에 내가 물어보기 전에 갚거나 갚지 못하면 먼저 와서 내가 이번 달에 이러이러해서 이렇게 되었고, 언제까지 이렇게 저렇게해서 갚아아보겠다고 얘기한다.
하지만, 나래는 좀 예외여서 그냥 용돈으로 모른 척 주기도 한다.
나래네 학교의 레벨이 좀 높아서 생일 선물도 꼬박꼬박 챙겨주니 나래가 항상 돈이 없기는 하다. ;



내 가계부는 천원 단위로 기록된다.
동전 단위까지는 정말 노력 해보았지만, 머리 터질 정도로 아파서 못하겠더랬다.
그래서 동전은 그냥 따로 모아두고, 100원이라도 지폐가 쓰였으면 지폐 기록으로 기록한다.
조금 억울(?)하지만, 그렇게 모인 동전이 지금은 약 2만원 돈은 되나보다. (아닌가; )

이기 또 나름대로 치밀한지 동전 개수를 어림작해보는 경우가 많은데, 개수가 줄어드는 듯 해서 눈치는 채고 있었으나 알고 보니, 엄마가 범인이었다.
출근할 때 커피값으로 몇 백원씩 챙겼다고.. (...)
엄마가 범인으로 들통난 것은 나래가 돈이 없다고 징징거리자 나래에게 무심결에 오빠 동전 가져가. 많어. 라고 했다가 해서.
그런데, 재미나게도 나래도 스스로 범인이라고 자백했다.
참, 무슨 가족들이 날 은행으로 알고 있어. ;


이번에 가계부를 검색하면서 가계부 적는 팁이나 강좌들이 네트에 나뒹구는 것을 보게 되었는데, 나름 쌓인 가계부 경력(;;)으로 내는 가계부를 잘 적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누가 나에게 빌려간 돈은 당연히 지출에 적고. (돈이 빠져나간 것이 확실하므로.)
내가 혹시나 빌리게 되면, 이 역시 당연히 수입란에 적는다. (이 역시 돈이 들어온 것이 확실하므로.)
통장의 입출금도 가계부에 동시에 기록하여 혼란이 있지 않도록.
다만, 통장의 합계는 괄호로 지갑 내 합계의 하단에 적어두어 내가 돈을 인출하더라도 혼란이 있지 않도록 한다.
인출한 내용은 당연히 적어야 할테고.
이렇게 정리해둔 상태에서 항시 생기는 영수증과 휴대폰 고지서 등 모든 거래에 관한 잡다한 것들을 플라스틱 파일 안에 몽땅 모아두어 필요할 시에 확인할 수 있도록 정리한다.
오차가 없도록 그 날 수입, 지출 당일에 적는 것은 당연하고. (특히 나는.)



여하튼 이렇다.
끝.


2008.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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