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 포스팅.)

정확히 음주 포스팅이다.
예상치 못했던 약속으로 고3 친구들을 만난 덕에 예상치 못했던 음주 포스팅을 하고 있다.
작년에도 음주 포스팅이라고 주절거리기는 했으나 그 때는 그냥 얼추 캔맥주 따위 혼자 마셔가며 그냥 했던 것인데, 사실 콜라보다도 더 취하지 않은 맛이었기에 음주 포스팅이라 보기엔 안쓰러운 면이 있었다.
이번엔 진짜 음주 포스팅이다.

확실히 술이 약해지긴 했다.
정확한 것은 내가 몇 잔을 먹었는지 세지 못했다는 것이고, 더욱 정확한 것은 내가 취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은 산울림의 11집, '그대 떠나는 날 비는 오는가'라는 음반을 들으며 글을 쓰고 있다.
내가 보기에 약 70% 취해있기에 내일 기억이 날지 나지 않을지조차 감을 잡을 수 없고, 기억이 나지 않더라도 오늘 이 글에서 실수를 했는지조차 망각하고 있을 것이다.
단, 두서가 없는 것은 확실하다.

술이 약해진 것은 확실하다.
나는 부모님으로부터 술을 배웠기에 잔 수를 세어가야 한다는 것을 배워왔고, 작년까지만 해도 소주 3병에 맥주 2000cc를 먹음에도 불구하고, 결고 적은 양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정확하게 잔수를 세었고, 살짝 어지럽군이라는 생각을 하며 길을 걸어왔던 경험이 있고, 그 경험의 수는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로 많았다.
정확하게 내 주량은 셀 수가 없었고, 어렴풋이 내 주량을 말하라고 하면, 겉표기 주량은 3잔. 속 주량은 참이슬 오리지널 2병 이상에 맥주 3000cc 정도의 적은 양은 아니었다.
주변에 세다고 하는 사람들.
형부터 시작해 고3 반 최고의 주량의 녀석까지도 넘볼 정도였으니 결코 적은 양이 아니었음을 인정한다.

다소 취한 것이 사실이기에 키보드가 잘 두르려지지 않아 자꾸 뒤로가기 버튼을 눌러 백업을 계속해서 해야겠다. ;


오늘 갑작스럽게 고3 친구 녀석이 휴가를 냈다고 했더랬다.
산울림의 '언제나 낯선 길'이 흘러나오고 있다.
원래 12월 둘째주에 나오려던 것을 사정상 땡겨 나오게 되었단다.
당혹스러웠으나 7시에 나오라는 전화를 듣고 준비를 대충 하여 나갔고, 고기도 먹고, 당구도 치고 다시 2차까지 가서 참이슬을 먹었더랬다.
소주 5잔까지는 잘 세었던 것 같은데, 그 이상은 세지 못했다.
이런 멍청한 녀석이라면서 세어보려 했지만, 이미 테이블 위에는 병이 6개 놓여있고, 아까 져넉 먹을 때에도 2병 있었는데, 내가 몇잔 먹었는지 셀 수가 없어 답답했다.
아, 천하의 거북님께서 이럴 수도 있군이라면서 자제를 하려했지만, 내가 너무 오랜만에 고3 친구 녀석들을 만난 덕분에 친구로서 소홀히 하지 않기 위해 비유를 맞추며 잔을 들었다.
이래도 예전 같으면 집에 와서 오늘 어느 정도 먹었군이라고 감을 잡을텐데, 오늘은 도무지 감을 잡을 수조차 없다.
5잔 이상부터 어지러워졌음이 분명한데, 18잔 이상은 된 것 같기도 하고.
어렴풋이.

그런데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난 사실 고3 친구 녀석들 만나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는다.
고등학교를 그따구로 보내면서 나는 고등학교 친구들이 너무도 부족했고, 고3에 가서야 다시 새출발을 하려는데, 그 때 부딪쳤던 장벽은 이 녀석들 모두가 2학년 때 같은 반이었다라는 조건과 게임, 스포츠가 주 얘기거리였다는 것이었다.
게임과 스포츠.
젠장, 둘 다 내 관심거리 밖이지 않는가.
게다가 난 게임이라 하면 심시티 같은 시뮬레이션 같은 고차원 게임을 좋아할 뿐이지, 스타크래프트나 워크래프트 같은 게임을 좋아하지 않는단 말이다.
하지만, 당췌 그 녀석들과는 그것 아니면 친구가 될 수 없었다.
간신히 한 녀석과 집 방향이 같아 단 둘이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친구로 만들어 지금은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으나 문제는 학교에서였지.
하교길에는 그 녀석과 집에 가면서 그 녀석을 버스에 태우고 하면서 친구가 되었지만, 학교에만 가면 게임 얘기뿐이니, 당췌 아무 것도 되지 않는 것이다.
이렇게 얘기하면 꼭 친구 안하면 되잖아라고 얘기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럼 그 상황 되봐라.
학교에 갔는데, 혼자 가만히 있는 상황을.
그 상황 되보면 얼마나 홀로 외로이 지내게 되는지 깨닫게 될테니.
게다가 안그래도 말 못할 눈초리를 받는 상황에 그게 가능한 것인지를.
그래서 그것을 이겨내기 위해 그 녀석들과 동화되어 게임을 하게 되었고, 그래서 다행히 그 녀석들과 지금도 연락을 종종이나마 주고 받아 오늘과 같은 반친구 녀석들이라도 되었다.
그 싫고도 싫은 게임을 하게 되어 친구가 되었다니 아이러니하지만, 여하튼.
근데, 고거이 졸업을 해도 끊이지 않아서 사실 나는 고3 친구녀석들 만나는 것을 그리 탐탁치는 아니했다.
만나믄 항상 주제는 게임, 여자, 축구 이 뿐인데, 내가 무얼하겠누.

근데, 오늘은 달랐다.
나는 오랜만에 만나서 낯짝 두껍게 얘길 꺼내어댔지만, 어쨌든 그 녀석들과 아무런 벽을 느끼지 못했고, 게임 얘기가 나오믄 잠깐 쭈그려 있다가 곧 동화되는 모습을 보일 수 있었다.
게다가 오늘은 4구의 운이 조금 따라주어서 다행이기도 했지.
혹, 어쩌면 오늘, 단짝 친구 녀석이 외박을 나와 언제든지 전화를 할 수 있다는(즉, 회포를 할 수 있다는) 안심에 젖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여하튼, 그랬다.

고등학교 친구 녀석들이 모였으니 자연스레 고등학교 얘기를 할 수 밖에 할 수 없는 것이고, 반 애들 얘기부터 선생님 얘기까지 다양한 이야기들이 오고 갔다.
특히 선생님 얘기를 할 때엔 반장과 서기를 거친 이상한 경력 덕분인지 선생님 성함을 누구보다도 잘 기억하고 있음을 깨달았던 순간이기도 했다.
게다가 이 녀석들이 잘못 알고 있는 선생님에 대한 정보들을 내가 나서서 아니라고 손사레치기도 했고, 아닌 것은 아닌지라 아니라고 외치기도 했다.
여하튼, 선생님 성함들을 잘 기억하고 있는 부분은 나도 좀 의아하긴 했으나 잘 기억하고 있어,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그 어떤 것보다 그런 얘기를 하면서도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더 당혹스럽게 느껴졌다.
듣다보니, 11집 마지막에서 두번째 트랙 '귀여운 소녀'가 흘러 나오고 있다.
오타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지금 치다보니, 살짝 취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오타가 상당히 많을 것 같은데..

어쨌든 전혀 당혹스럽지 않았다.
나야말로 전혀 거리낌없이 고등학교 시절에 들었고 들었던 소문이나 경험들을 얘기하고 얘기했다.
다만, 아쉬운 것은 내가 떳떳하지 못해 찾아뵙고 싶었던 선생님 한 분을 찾아뵙지 못했다는 점이 상기되었고, 한 녀석과 찾아뵙기로 하였으니 그걸로 만족한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왔다.
부대에서 휴가 나온 녀석은 집이 가정동이므로 택시를 타고 일찌감치 간지 오래이고, 다른 녀석들은 집이 죄다 효성동이므로 나만 홀로 걸어오는 길이었으나 다소 헤롱헤롱이었으나 그 길이 안타깝지는 않았다.
그러면서 나는 집에 오는 길에 그 택시 타고 간 녀석에게 집에 잘 들어갔노냐고 전화를 해댔고, 이번에 쓴 돈을 미라지 가계부에 적어대면서 0의 개수가 잘 세어지지 않아 한참을 헤매어댔고, 집에 와서는 제일 먼저 한 일이라곤 야식을 드시고 계신 엄마, 아빠에게 커피를 타준 일이었고, 그 다음 한 일은 내일 못 보겠다고 연락한 고1 절친한 친구 녀석의 문자 메세지에 바로 전화를 걸어 뭐, 어쩔 수 있겠느냐고 근래에 들어 네 얼굴 못봐서 아쉽지만, 일단 네 일 열심히 해서 잘 해결하라고 답한 것이었다.
친구들에게는 내가 잘 둘러댈테니 부담 갖지 말고, 잘 하라고 말이지.
그리고는 이 글을 끄적거리는 중이 된다.



알 수 없지무얼.
올해 딱히 한 일은 없기도 하고.
드러난 것은 아무 것도 없고.
누가 올해 무얼 했니? 라고 물어보면 그냥 얼버무리고 말 테지만.

그냥 그런 것이지무얼.
내가 뭐라고 할텐가.
사실 오늘 고3 친구 녀석들에게 이런 것들은 살짝이라도 얘기를 해주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한참을 고민했다.
그냥 작년 한참동안 우울증이었더랬는데, 요거이 올해 풀어내느라 고생 좀 했다고나 할까라고 고민도 했더랬지만, 그럴만한 진지한 타이밍은 나에게 찾아오지 않았더랬다.
그저 가벼운 웃음 따위로 넘길 수 있었을 뿐이었지.

그래도 다행인가 싶다.
이런 얘기를 하면서 마음 편히 얘기 할 수 있다는 것.
나래에게도 속 편히 얘기할 수 있을만큼 떳떳해졌다는 것.

그것으로 만족해야지 내가 무얼 더 바라겠는가.


산울림 11집의 마지막 곡, '옷 젖는 건 괜찮아'가 흘러나오고 있고마이.

몸은 떨리고, 몸은 떨리고.
날이 개면 마르니.
마음 저 주면.
혼자서 걸을테야.
비 오는.


사실 이제 비는 탐탁치 않다.
옛날이래봐야 비 오는 때에 울어보면 아무도 모르게 그냥 비 맞았다고 둘러대니 좋아했더랬는데, 지금에야 와서는 비 와봐야 울 일도 없거니와 우산을 펴야 하는 수고를 저질러야 하니, 불편하기 짝이 없다.

몸은 떨리고, 몸은 떨리고.



2008.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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