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기회가 어찌어찌 닿아 내 친구 녀석 둘이 우리 부모님과 나와 거실에서 족발 하나와 술 몇잔으로 저녁 12시에 야식을 했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 이것저것 담소를 나누다가.

아부지는 다음 날 이른 출근을 하셔야 했기에 일찍 들어가셨고..

여하튼, 상황이 여차저차해서 이러쿵저러쿵해서.

내 한 친구 녀석과 어머니는 나를 사이에 두고는 나에 대해서 얘기했더랬다.
나머지 친구 녀석은 내 방에서 휴대폰을 사이에 두고, 애인과 다투고 있었고.
시간은 새벽 2시.


어머니는 친구 녀석에게 다른 또래 애들과는 다른 아들이 항상 걱정되고, 고민 대상이라는 말씀을 하시는 중이었고.
친구 녀석은 또 그 나름대로 나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어머니께 어필하고 있는 중이었다.
나는 사이에 껴서 이도저도 못하고 뭐, 갈증도 안나면서 자꾸 부엌에 가 물을 마시곤 하다가 그냥 내 방에 들어가 다른 친구 녀석이 애인과 다투는 것을 듣고 있어야 했다.

무슨 얘기를 나누는지 얼핏 들리곤 했찌만, 애써 들으려 하지 않았고, 후에 친구 녀석이 어머니와 무슨 대화를 했는지 궁금하지 않느냐고 물어봤는데, 나는 어머니와 너의 대화는 비록 내 얘기가 주가 되었지만, 엄연히 사적인 대화였으므로 궁금해해서는 아니되고, 또 설사 궁금하더라도 물어볼 수 없다고 대답했다.

헌데, 친구 녀석이 참지 못하고, 그 얘기들 중 조금은 얘기해주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위 제목과 같은 것이었다.


아들이 너무 어른스러워 보이려 해서 고민이다.
그리고 그것이 고민이지만, 아들을 그렇게 만든 것이 부모인 것 같아서 차마 얘기는 못하겠다.
애써 그러진 않았으면 좋겠는데, 딱히 뭐라고 할 수도 없어서 그냥 우리 둘(아부지와 어머니)만 얘기한다.


이 얘기를 듣고는 괜히 친구에게 어른이 될 나이가 되어서 보다 어른스럽게 행동하고 생각하려는 것뿐인데, 문제가 무엇일까라면서 아마 내 기억에 이 때에도 꽤 깊게 들어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고보니, 이것도 꽤 오래전 이야기다.


응.
나는 어머니께서 하시는 말씀이 무슨 말씀인지 잘 알고 있다.
예를 들어, 고민이나 스트레스 혹은 정말 단순한 짜증 정도도 집 안에선 표출하지 않는다.
집 안의 모두가 잠든 후에 그저 PC 앞에서 음악이나 들으며, 속으로 삭히는 것이 주 일과다.
그러다 고민이나 스트레스는 대부분 다른 또래 애들과는 다른 경우가 많아 이전부터 네트에서 그 해결 방법을 모색하면서 내 생각을 확장시켜 해결 방법을 찾은 경우가 다반사이고, 그것에도 한계가 느껴지면, 그 때서야 지인과 친구들에게 조금 한풀이를 해보는 정도이다.
정말 단순한 짜증 정도는 올라오는 열을 내리누르듯이 한숨 한번 쉬고, 먼 산 보다가 끝내곤 한다.

어쨌든, 부모님과는 고민 얘기를 하지 않는다는 것.
왜인지는 글쎄올시다이다.
이 얘기를 듣고난 후부터 지금까지 그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았는데, 아마 고등학교 시절에 절대 어른스러워져야 한다라는 사고 방식이 자리 잡혔기 때문 아닐까 싶기도 하고.
결정적으로 아들을 가장 잘 이해해주셔야할 어머니께서 이 아들을 특이하다고 보시니, 애초부터 고민이나 나만의 얘기를 하지 않았던 것도 같다.
분명히 말하지만, 지금도 어머니는 내가 왜 음반을 사는지에 대해서 물어보신 적이 없으시고, 지금도 음반을 사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신다.
아마 가족들 모두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여하튼, 지금까지 생각한 이유는 위와 같다.
그래도 아예 하지 않는 편은 아니어서 일반적인 고민 정도가 떠오르면 어머니와의 식사 시간에 종종 얘기하곤 한다.
어머니 말마따라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하는 모자도 없기는 할 것이다.
그만큼 엄마와 나는 많은 대화를 하곤 한다.
다만, 나는 그 대화에서 내 속 얘기를 조금 드러내지 않을 뿐이지.

언제나 그랬듯 처음부터 드러내지 않았던 것은 결코 아니다.
드러냈는데, 전혀 이해하지 못하겠다 싶은 반응이면, 나도 드러낼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렇게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 것이다.



랩탑이 매우 갖고 싶었다.
아니, 지금과 같은 생활 패턴으로는 X86의 PC가 없어 생활이 지장이 있을 정도다.
도서관의 PC를 사용하면 된다지만, 주말엔 어쩔 것이고, 오후 6시면 닫아버리는, 게다가 항상 자리가 없어 사용하기도 벅찬.
더군다나 공용 PC에 비주얼 스튜디오를 설치할 수는 없잖아.

여하튼, 넷북이든 랩탑이든 뭐든 갖고 싶었다.
씽크패드가 아니어도 좋아.
삼성이어도 괜찮으니, 하나만이라도.

헌데,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최소 25는 있어야 할텐데, 지금 당장에 그런 총알이 없을 뿐만 아니라 아이팟을 고치느라 그나마 모아두었던 자금도 날아간 상태다.
구글 애드센스가 날아오면 가능할텐데, 그 녀석이 미국에서 날아오려면 아마 2009년 상반기가 지나있을게다.



고민을 거듭하다 부모님께 돈을 빌려보기로 했다.
용돈을 다시 받기로 한 것도 나는 내키지 않지만, 당장 필요한 것을 어쩌겠는가.
애드센스와 기타 추가 수입이 있을 예정이니, 그 증명을 보여드리면 가능할 것이고.
내가 왜 랩탑이 필요하고, 그것으로 인해 생기는 문제와 비효율성은 무엇인지 말씀드리면 가능할 것이다.

애드센스 수익 보고서 인쇄..


아버지: 무슨 문제 있니?

아들: 음.. 제가 랩탑.. 아니, 노트북이 필요해서 엄마한테 내일 돈을 빌려달라고 하려고요. 내가 수익성 블로그 아이디어를 내서 현재 운영중인데, 그것으로 지금 4월 중으로 100달러를 넘어섰구요. 여기 보고서에도 나와 있는데, 하루 수익이 평균 얼마나 나오고, 이걸로 하면 아마 6월 중에는 얼마 얼마가 들어올텐데요. 무엇보다 프로그래밍 배우는데 사용하고프고, 더군다나 워드, 파워포인트 등 자료를 만들고 보려니..

아버지: 그래서. 너가 사려는 노트북이 얼만데.

아들: 아, 원래는 넷북 정도 사면 좋겠다 싶은데, 제 수중에 그만한 돈이 없으니, 중고 노트북을 알아보고 있는데, 조금 전에 그럴싸한 노트북이 올라왔어요. 저 녀석(내 S830)에서 조금 더 사양이 좋은데, 좀 오래되긴 했지만, 그래도 씽크패드잖아요? 배터리는 방전이어서 충전해야 하겠지만..

아버지: 음.. 근데, 내일 되면 엄마한테 그런 말 하지 말고, 그냥 필요하니까 사달라고 해. 그런 거 하지 말고.

아들: 아.. 아니, 어떻게 그래요. 그래도 이게 적은 가격도 아니고, 제가 필요한 건데 제가 사야죠..

아버지: 그건 그거대로 따로 하고. 지금 보니, 그렇게 비싼 것도 아니네. 공부에 필요하면 사줄거야. 그리고 최고사양은 아니더라도 중간급 정도로 사. 그게 뭐야. 딱 봐도 오래되어 보이네. 좀 괜찮은 거 사서 나중에 엄마가 쓸 수도 있고 그러면 되지.

아들: 그러면, 50은 필요할텐데요. 뭐, 조금 더 내려서 최소 30이요. 중고로 25 정도랄까요. 25 정도면 고진샤.. 여하튼이요.

아버지: 여하튼, 적당히 엄마한테 말해서 그렇게 해. 그리고 너 그거 들어오는 건 나중에 엄마한테 용돈 드리는 것처럼 드려도 되는거야. 빌려달라고 하고, 빌려주는 건 아니야.

아들: 음.. 네.

아버지: 부모님께 사정 얘기하는데, 그런 것까지 보여주면서 얘기하면 엄마가 싫어해..



일주일 내내 고민해서 겨우 얻은 결론이었는데, 결국 원점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리고 뭐가 어떻게 된 것인지 잘 몰라서 머리가 복잡하다.


요즘 도서관이든 독서실에만 가면 종종 보이는 랩탑 두고 있는 사람이 정말 눈물나게 부러웁다.
비록 과제를 하고 있는 모습이라 할지라도 너무도 부러운게지.
아침에 학교에 와서 저녁 느즈막히 집에 가는데, 그러고나면, PC 때문에 귀가 시간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 너무도 답답했다.
PC만 아니면, 집에서 더 일찍 나서서 학교에서 더 늦게 나갈 수도 있을텐데..라는 생각이 끊이질 않았고, 팀별 과제를 하는데도 도서관에서 종이 펴놓고 할 필요 없이 그 때 그 때 네트에 접속하는 것이 얼마나 상쾌하고도 기본적인 일인지.
미라지가 있었지만, 이 녀석은 그 생활의 50%도 도움되지 못한다.
정말로 이 녀석은 사치가 분명하다.
버스에서 3G망에 접속해 네트에 접속하는 건 과제나 학업을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저 내 사적인 만족이지만, 그나마도 비표준화된 국내 웹환경과 여러가지 사항들 때문에 미라지의 웹서핑은 PC의 그것과는 다르다.
물건 주문을 미라지에선 할 수가 없고, 학교 홈페이지에서 내 기록을 미라지에선 볼 수도 없다.

여하튼, 그리 했더랬지만, 아이팟이 고장났을 때도 총알이 없어 끙끙거렸지만, 끝끝내 참고 있었다.
나중에 급한대로 형이 이 사실을 듣고 자금 지원을 해주어 나는 너무나도 고마웠지만, 여하튼 많은 생각을 들게 한다.


비록 몇 십만원이 무지 큰 돈도 아니고, 그렇다고 작은 돈도 아닐텐데, 나는 너무도 크게 보이기만 한다.

친구 녀석이 예전에 나에게 물었더랬다.
지금의 100만원과 학창 시절의 100만원이 같게 보이느냐고.

그 녀석 질문의 요지는 일이라는 것을 해보니, 100만원이 매우 큰 돈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는 얘기였다.
나는 그 당시 통장에 100만원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여행으로 50만원을 사용하고 왔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큰 돈이라고 대답했다.
무려 음반 100장을 살 수 있는 돈이 아닌가.


모르겠다.
돈이란 것이 이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 싶기도 하고.
내가 굳이 어른스러워보이려는 것인가 싶기도 하고.
내가 보기엔 정상적이고, 상식적인데 틀린 것가 싶기도 하고.


오늘 날짜는 4월 11일 토요일.



2009.04.11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