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친구 녀석이 조심스레 물어왔다.
'조심스레'라고 표현한 것은 새벽녁이었기 때문.

나는 힘든 일이 있을 때, 무엇이 가장 먼저 생각나느냐고 했다.

늘 그랬듯이 뜸을 들일만도 한데, 나는 주저없이 'PC'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뜸을 조금 들였다가 PC 자체라기보다 PC로 음악을 들어서 그런 것이니, 음악이라는 대답이 옳겠다고 했다.

그 다음을 물어오길래 '친구들'이라고 대답했고.
그 다음을 물어오길래 조금 뜸을 들였다가 '가족'이라고 대답했다.

그러더니, 나한테 나와의 대화는 이래서 재밌다고 했다.
무슨 소린고 하니, 다른 녀석들에게 물어보자 힘든 일이 없었다고 대답했고, 또 다른 녀석은 PC방이라고 대답했댄다.
근데, 내가 대답한 건 재밌나?
나는 하나도 재미없는데.



사실 대답하고도 씁쓸했다.
왜 힘들 때, 사람이 아니고, PC라고 대답했는지.
그것도 전혀 뜸조차 없이.
이럴 땐 또 자신있게.

후에 음악이라고 답을 고쳤지만, 그렇든 저렇든 사람이 아닌 건 분명하잖나.


게다가 나는 이런 대답을 하는 내 자신이 그닥 썩하니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차라리 나도 PC방이라고 대답하는 편이 좋겠다.
좀 가벼워보여서 그것도 좀 아니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차라리 그렇게 가벼운 편이 속 편하고 좋다.

그러면, 아이팟 같이 무거운 쥬크박스를 들고 다닐 필요도 없고, 다른 또래들처럼 옷 사고, 신발 사는 데에 돈을 부으면서 음반을 사는데 낑낑거리지 않아도 될테니까.
나는 지금도 여유돈이 생기면, QUEEN 음반부터 사고 싶어서 몸살이다.

이건 여담이지만, 나는 사실 나는 mp3p라는 표현을 마음에 들어하진 않는다.
그 동안은 마땅한 표현이 없어서 mp3p라고 하거나 그냥 아이팟이라고 얘기했는데, 아이팟 같은 쥬크박스라고 언급하는 편이 나을 것 같다.
우연히 이 글을 쓰다가 괜찮은 표현을 찾았다.
오늘은 운이 좋은 날이다.

'쥬크박스'라는 표현을 발견한 날.


여하튼, 나는 그런 내가 탐탁치 않다는 것이다.
능력적 부족이나 하는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서.. 따위의 이유로 '나'라는 존재를 마음에 안들어 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


하지만, 그리 생각해보면 음악이라는 것도 애매하기는 하다.
비틀즈, 퀸 등의 몇몇 음악가들에게만 반해있고, 물론 지금은 다른 음악가들의 음악도 집중하는 편이지만, 나는 음악에 대해 문외한이다.
다만, 지금은 나이가 어려 많은 것을 접해보지 않아서..라는 핑계로 이해하고 있을 뿐이다.




오늘 집에 돌아와 집문을 열었고.
가족들은 소파에 나란히 앉아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었다.

엄마는 나에게 일찍 들어왔네? 라는 질문인지 아리송한(물론 질문이 아니란건 안다.) 질문을 받고 나는 '네'라는 대답으로 방에 들어왔다.

어김없이 PC를 켜고, 손을 씻고, 블랙커피를 타고는.
방문을 닫고.
비틀즈 음악을 들으며.
불여우로 네트를 항해했다.


문제는 없지만, 뭔가 또 이상한 기운이 느껴졌다.

다른 가족들이 모두 잠들 때까지 나는 방 안에서 네트를 헤엄치다가 커피잔을 부엌에 갖다 놓는다.
나래의 방문을 열어보니, 깜깜.
응?? 하는 소리에 잘라구?? 라고 대답하고.
나래는 아마 내일은 기억 못할 소리로 '안녕'이랬다.
응. 안녕.

문제는 없다.



2009.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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