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신승훈 2집을 들으며.)

난 중학교 시절부터 가계부를 써왔다.
뭐, 익히 알려진대로 그 좋지 않은 기억력 때문.
적지 않으면 살 수 없는 머리로 타고 났기 때문에 적어야만 살 수 있다.

하지만, 사실 중고딩 시절부터 적기는 했으나 중학생 때 당시엔 어설프기 짝이 없었다.
그리 큰 지출을 하는 것도 아니었고, 항상 돈이 나가는 건 오백원, 천원.
적기도 애매모호하고, 동전 단위는 정말 기억하기 힘들었기 때문에(집에 와서 적었어야 했으므로)
거의 정확하지 않았다.
게다가 적는 데에 거의 의미가 없었지.
사고픈 것도 없고 그랬을 때이니까.
(그저 분식집에서 친구 녀석들과 먹거리 먹는 것이 주였던 시절.)

본격적으로 가계부를 적게된 건 고3 무렵.
음반을 구입하게 되면서 4만원의 용돈이 돈 백원도 급박해졌고, 알뜰 알뜰하게 짜내고 짜내어 중고 음반을 구하고 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적게 되었던 것 같다.

그래도 이러나저러나 그런 과정을 거쳐 확실하게 가계부에 정착한 건 작년 언젠가부터였고, 지금은 제법 그럴싸하게 적고 있다.


그리고 미라지를 구입했는데, 미라지를 구입한 이유는 둘도 없이 메모와 기억.
때문에 항상 이천원, 이천원 이러면서 길을 걷느니 미라지에 써놓고 자동 싱크하면 어떨까 싶어서 오늘은 그에 대한 검색을 해보았다.
나 같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기에 PDA를 이용해 가계부를 작성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많아서 꽤 많은 어플들이 나오기는 했다.
상용도 있고, 프리웨어도 있고.
몇 가닥 건져 올리려는데, 다들 나한테 과분한 어플들이었다.
뭐, 카드 정리하는 것부터 대출, 펀드 정리까지.
어마어마한.

나는 그런 거 필요없어서 어찌되었건 골라챙겼는데, 문제는 미라지였다.
미라지는 윈도우즈 모바일 표준 해상도가 아니지.
정사각형 해상도인 PDA 역사상 가장 괴상한 해상도를 갖고 태어났다.
때문에 많은 어플리케이션들이 먹통이 되곤 하는데, 이번에는 그 정도가 심각했다.

그래서 어쨌든 다시 고르고 골라서 찾았는데, 이번에 문제는 주메모리에만 설치가 된다나.
이번에 문제는 추가 수입 표기를 못한다나.
이번에 문제는 잘 쓰다가 갑자기 데이터가 날아간다나. (아니, 가계부 데이터가 날아가믄 무얼 믿으라는.; )


이렇게 삽질 아닌 삽질을 수시간 하고 나니, 내가 뭐하고 있는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라지 없을 때도 잘 하고 있던 것을 단지 조금 편리하자고 더 불편한 길을 걷고 있단 생각이 불현듯.
몰랐던 것은 아니나 디지털 기기라는 거이 원래 그렇지 않나.
까닥하다가 본질을 잃어버리고 기계에 맞춰버리는기지.

그래도 옛날만큼 바보는 아니어서 다 때려 치우고, 이번엔 엑셀 파일로 정리해서 미라지와 PC를 싱크시키기로 결심했다.
가계부 엑셀 이라고 검색하면 꽤 그럴싸한 자료들이 나오는데, 역시 나는 화려한 치장 따위 필요없고, 더군다나 미라지의 엑셀 모바일이 그 정도가 아니기에 그만 두고, 내가 직접 만들기로 했다.
그리고 미라지에 넣어 테스트해보았는데.

내 기대가 좀 컸나보다.
엑셀 모바일의 성능이 전혀 아니었다.
행과 열의 크기도 피시에서의 설정과 다르게 인식했고, 절대적으로 사용이 정말 불편했다.


이 쯤 되면 지친다. ;
뭐하는거냐.
그냥 종이에 하면 되지.
역시 종이만한 게 없어 라면서 머리를 잠깐 식히고, 미라지로 어플리케이션을 찾기 전에 정리했던 임시 가계부를 바라보았다.


올해 11월달은 이것저것 지출과 수입이 많아서 가계부에 확실히 신경을 쓰고 있지 않았는데, 대충 정리를 하고 보니, 무려 2만원 가까이 차이가 나는 것이 아닌가.
이렇게 오차가 나면 곤란해서 머리를 짜내고 사진 파일들과 그 동안의 기억을 떠올리고 또 떠올려서 몇 가닥을 찾아냈다.

하나는 친구 녀석과 당구 친 것을 기록하지 않았고.
다른 하나는 엄마의 화이트 산 것을 기록하지 않았더랬고.
나머지 하나 결정타는 나래에게 사준 계란빵을 기록하지 않았더랬다. ;

여하튼, 그리 적으니 오차는 제로.
오케이.


그리하고는 오픈오피스의 라이터를 열어 표를 만들고, 대충 그럴싸하게 만든 다음 프린트하여 결국 종이로 가계부를 정리했다.
그리고나니 시간이 2시네.

...


임시 가계부 작성 중.. _오차 계산으로 헤매이고 있음. ;



2008년 한 해 동안 노트에 적었던 가계부.



통장 기록과 가계부 인쇄 테스트 중.



그래서 허무한 결과물.




2008.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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