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 이게 추억인가 몰라.


알파5로 미라지를 접사 촬영하다가 엄마가 오시는 소리가 들렸다.
순간 픽~ 하고 장면 하나가 스치면서 나는 알파5의 전원을 끄고, 책상 옆에 그냥 두었다.
그리고 엄마는 아빠와 들어오시고, 나는 자연스레 엄마의 옷을 받았다.


고2 무렵에 사진이 무엇인지 차츰 알아가던 시절이 잠깐 있었다.
지금에는 당시 갖고 있었던 자그마한 사진의 열정이나 지식 따위는 휴지 조각이 되어버린지 오래이지만, 여하튼 그런 시기가 있기는 했다.
그렇다고 지금 그 열정이 아예 사라지지는 않았다.
사진이란 마음이 안정되어야 그 마음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것.
따라서 근래에 들어서는 사진다운 사진은 촬영하지 아니하고, 그냥 일상의 작은 것들만 찍고 있다.
(그런 것이 벌써 1년 째.)


사진에 막 빠지게 되는 사람은 대부분 '아웃 포커스'라는 기술인지 구도인지 여하튼.
아웃 포커스라는 것에 매료되곤 한다.
실제로 DSLR을 처음 구입하는 사람의 대부분은 이 아웃 포커스의 촬영을 위해 구입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아웃 포커스란 배경이 흐릿해짐으로써 피사체(찍으려는 사물이나 사람)가 사진에서 더 두드러지는 것을 의미한다.

아웃 포커스가 잘 되기 위해서는.
조리개를 적당히 조절하고.
(아마, F수를 높여야 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다 까먹었다; )
배경과 찍으려는 피사체의 거리를 멀리 하는 것이 좋으며.
렌즈는 망원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당연히 피사체는 렌즈에 가깝게 하는 것이 훨씬 좋다.

DSLR의 경우에는 필름의 역할을 하는 CCD나 CMOS가 크기 때문에 아웃 포커스에 대한 지식과 익힘이 있지 않아도.
심지어 AUTO로 놓고 찍어도 대부분 아웃포커스로 촬영이 된다.


좀 마이 셌다;
여하튼, 나도 사진이란 걸 처음 알았을 적엔 요것에 흥미를 갖고 있었다.
그러면서 조리개와 셔터 속도의 조절로 사진 속에서 많은 것들이 변한다는 것을 알고는 점점 더 그 매력에 빠져나갔던 것 같다.

하지만, 문제는 내 디카가 없다는 것.
사진에 빠지게 된 계기는 아부지의 두번째 디카, 삼별 테크닉의 알파5 였더랬다.
그 이전에 올림푸스의 C-1이 있었지만, 디카 붐이 막 일어날 때 쯔음에 구입한 것이어서 일명 폰카보다도 못한 성능을 보여주곤 했다.
우선 화소수부터 백만 화소인데다가 조리개, 셔터 속도 조절 당연히 노.
LCD는 10분 이상 켜면 배터리 방전.
망원 노.
접사 노.
그냥 되는 건 파인더로 눈을 작게 떠 피사체를 보고 찍는 것일뿐.

그리고 수 년이 지나 우리집이 흔들거리기 직전이었던 나의 고1 시절에 아부지께서 구입하신 디카가 알파5 였더랬다.
뭐, 덕분에 아부지께서 제대로 사용하시려던 때에는 이미 구형이 되었더랬지.

여하튼.
고1 때에 아부지께서 디카를 사시면서 모델명 몇 개로 나에게 물어보셨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나는 당시엔 단지 휴대폰에만 집중적으로 알고 있었을 뿐.
디카에 대해서 아는 거라곤 CMOS, CCD 뿐이었기에 뭐라고 말씀드리진 못했더랬다.
우선 아부지는 무조건 삼별이셨기에 나에게 이건 어떠냐라고 하시고는 당장 다음 날에 사가지고 오셔서 내가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난 단지 괜찮은 것 같긴 한데, 조금 더 찾아봐야 알 것 같아요. 라고 했을 뿐인데.


막상 알파5가 오고나서는 그리 탐탁치 않았다.
우선 느렸다.
전원 온오프도 느리고, 셧투셧(아마 용어가 맞을텐데, 사진을 찍고 바로 다음 사진을 찍는 데에 걸리는 시간.)도 느리고, 저장도 느리고.
그리고 화질이 후졌다.
500만 화소인건 알겠는데, 전체적으로 봤을 때, 뭔가 엉성한 이미지랄까.
뭐, 여하튼.
역시 좀 더 알아보고 사셨어야해..라는 속생각이 있었지만, 아부지는 대만족이셨으므로 나는 말을 아꼈다.



...

이하 Elton John - Sorry Seems To Be the Hardest Word 를 들으며..

그리고 시간이 쭉 흐르다가 아마 고2 말쯤 나는 네트라는 세계에 풍덩해버렸고, 허우적거리며 헤엄을 치다가 사진의 매력을 알았던 것 같다. 그런 사진이 나오기 위해선 조리개와 셔터 속도를 알아야 함을 알았고, 사진이 그냥 단순히 찍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던 것 같다.
당시 전까지만 해도 나는 '사진이란 건 왜 전시회를 하는거야? 그냥 찍으면 되는걸'이란 생각 따위를 갖고 있었는데, 오히려 그렇지 않다는 걸 알았더랬다.

그런데, 네트를 좀 더 뒤적거려보니, 아부지의 알파5가 똑딱이치고는 많은 수동 기능을 지원한다는 것을 알았고, 고걸로 한번 조작이나 해보자 싶어서 만져본 것이 화근이었다.
꽤 나름대로 수동 조작이 가능한 알파5는 느린 것만 제외하면 사진을 찍는 기술에 대한 지식은 조금 쌓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 한 때 내 책상에는 항상 미니 삼각대와 알파5가 걸려있었고, 시간이 지나 부평의 서점에 들러 사진책 하나를 건져온 것 같다.



그러다 아마 엄마께서 내 방에 있는 PC로 인터넷을 하시다가 그 책을 보셨더랬고.
그 펼쳐있는 그 책에는 접사시키는 디카의 자세에 대해 설명이 있었더랬다.
엄마는 순간 아들 녀석이 아무 이유 없이 디카를 쪼물딱(;;;;)거리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셨고, 그 날 그 책은 던져지고, 미니 삼각대도 던져졌다.
디카는 다행히 침대에 두고 있었기에. (...)

그리고 그 날 상당히 혼났던 기억이 난다.
이후에 나는 알파5를 손에 대어보지도 못했고, 그 책은 책장에서 한참을 머물렀더랬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나는 몇 달간에 걸쳐 치열한 목돈 마련에 힘써서 무려 6개월이 지나서 15를 들여 중고 W-1을 구입했던 것 같다.
그래서 W-1은 내 나름대로 애착이 있는 것이지.
지금은 형한테 잠깐 가 있지만, 여튼, 그리그리 되었더랬다.



오늘 미라지를 접사 촬영하려고 W-1이 있어서 잘 들지 않던 알파5를 드니, 옛 생각이 나서 끄적거려보았다.
뭐, 오늘 상황이 그 때와 마이 비슷해서이기도 하고, 여러가지로.

기분이 달라지니 글의 뒷부분이 마이 엉성하다.



2008.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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