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대화.


나래: 오빠, 얼마나 병원 다녀야 한데?

나: 몰라. 평생?

나래: 평생? 엥?

나: 이거 만성이래. 그래도 젊으니까 나을꺼라 기대하고 다니는거야.
    그래도 이번주까지 다니고, 아르바를 할까해.
    오빠가 심각한 자금난에..흑;

나래: 만성? 쯧쯧.
      거봐, 내가 진작에 가라고 할 때 갔어야지. 바보 멍충이.

나: 잘못했어요. 나래 누나.

나래: (;;)
       왠 나래 누나?

나: 누가 나래는 누나 같데. 누나라고 부르면 안되나?ㅋㅋ''

나래: 난 누나 싫어.

나: 엥? 왜?

나래: 의젓해야하잖아.
       난 의젓하기 싫거든.
       책임감도 있어야하고.
       그리고 어리광도 부리지 못하니까.

나: 그.. 어리광이 아니고, 떼어먹을 수 없다라고 표현해야 하지 않을까?

나래: 아, 돌려말하면 그냥 그런줄 알지, 오빠는 꼭 그렇게 찝어서 얘기하드라. ㅋㅋ''

나: 뭣하러 돌려말해. 다 아는걸.
    차라리 솔직하게 곧바로 얘기하면 웃기지도 않지.ㅋㅋㅋ''

나래: 하여튼, 난 의젓하기 싫어.

나: 응. 그래..



나래에게 문득 장난으로 '누나'라고 했다가 저런 의미를 내포하고 있단 걸 깜빡했다.
아, 누나나 형 같은 단어가 단지 '나이'만을 포함하지 않을거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의젓함.
책임감..

나란 녀석은 '오빠'라는 호칭 하에 저런 거창한 것들을 잘 지니고 있을까?



오늘의 대화.

나: 이제 다 끝났지? 아닌가? 내일?

나래: 끝났으니까 이러고 있겠죠?
       (TV 보면서 발톱 깎는 중.)

나: 아마 시험 기간 중에도 TV는 보고 있었죠?

나래: (-_ㅡ;; )


나: 요 드라마 재밌어?

나래: 아니, 재미없어.

나: 그럼, 보기로 한건가? 아님, 좀 더 지켜보기로 한건가?

나래: 아니, 안봐.

나: 그럼 지켜보는 건가?

나래: 아니. 발톱 깎을라고 보는 거야.

나: 아.. (-_ㅡ;; )



나래가 배우, 차태현이 나온다고 설레였던 드라마인데, 그닥 반응이 아니더니, 결국 보지 않기로 했단다.
여하튼, 난 TV 볼 때 말 시키는 걸 좋아한다.
나래는 싫어해서 조금만 더 하면, 짜증부리고.
난 TV 보면서 평가도 하고, 생각도 교환하고 커뮤니케이션하는 걸 좋아하는데, 나래는 그렇게 하면 TV에 집중을 할 수 없단다.
아니, 별 내용도 없는 TV에 집중을 해야 하나.. (-_ㅡ;;)
한 4주 안보다 봐도 이해되는 한국 드라마인걸. ;;



나: 아, 이 과자 안먹어?

나래: 응.

나: 아, 난 너 먹는줄 알고 뜯었잖아.
    아까 그거 물어본거잖아.

나래: 엥?

나: 눈빛으로 물어봤잖아.

나래: 바보.


나: 난 과자 싫어해서 한 입 먹으면 맛이가 없더라.
    아, 이거 어떻게 다 먹어.

나래: 저기 과자 통에 넣어. 눅지지 않게.

나: 아, 그럼 되는구나.

나래: 미련 곰탱이.

나: 야, 어떻게 동생이 오빠한테 미련 곰탱이라고 하냐.

나래: 왜 못하냐. 누난데. ㅋㅋㅋㅋㅋ''
       이럴때만 누나다~ ㅋㅋㅋ''

나: (-_ㅡ;; )



나래: 시험은.. 그냥 그래요.

나: 뭐가 또 그냥 그래.
    그래서 오늘은 뭐하고 놀다 왔어?

나래: 아, 오빠오빠.
       학교 교무실, 그러니까 선생님. 아, 그러니까, 그 교무실이 같아서..음..
       하여튼! 교무실에 갔는데, 막 우리 1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나 보더니,
        "나래 이번에 일일일 맞았더라~" 이랬다~
       기분 좋아.ㅋ'

나: 응.

나래: 내가 말했잖아. 막 우리 학교 선생님은 공부 잘하는 애들 좋아한다고. 응.
       근데, 내 친구 중에 전교 1등인 애가 있거든?
       이과 1등인가? 아니, 문과, 이과 해도 1등인가?

나: 아, 그 전에 반 사진에서 나래 옆에서 찍은 애?

나래: 아? 응. 아, 근데 좀 있다가 친구랑 복도 지나가는데, 막 또 선생님을 만난거야.

나: 1학년 때 담임선생님?

나래: 아니. 아, 응. 아, 지금은 2학년 부장 선생님이야.

나: 아, 그러니까 1학년 담임선생님이셨던 분이 2학년 부장 선생님이구나?

나래: 응. 그래서 또 인사했는데, 그 선생님이 또 "나래, 이번에 일일일 맞았지?"라더라구.

나: 음.. 그럼, 친구가 좀 그랬겠네.
     자존심 좀 있으면 기분 많이 상할텐데.

나래: 그렇지. 아니, 이건 자존심 있건 없건 당연히 기분 나쁘지.
       걔는 이번에 이일일 맞았거든. ㅋㅋ''

나: 그래서 친구가 뭐라디?

나래: 뭘 뭐라그래. 친구가 성적 올라서 기분 좋다는데.ㅋㅋ''

나: '신났구만.'

나래: 아, 오빠야, 오늘 스티커 사진 찍었다. 이리 와봐.

나: 응.

나래: 얘, 얘야.

나: 얘는 맨날 얼굴 가리고 찍드만.

나래: 응??

나: 전에 단체 사진에도 얼굴 가리고 찍었잖아.

나래: 어어.. 오.. 그러네. 아냐. 여긴 안 가렸어.

나: 근데, 친구랑 이번엔 단둘이 갔나?

나래: 응. 시험 끝나고 학부모들이 점심 사주러 뷔페 가고 그러니까 애들이 피곤하데서 기숙사 애들은 자러 가고 하니까 없더라구.
       여자 애들이 적으니까 이래.

나: 응. 걔 이름은 뭐야?
     나래 유일한 친구인데, 기억해줘야지.

나래: ...(-_ㅡ^)
       아, 근데 나 이번에 한그릇 밖에 못 먹었어~
       엄청 배고팠는데, 엄청 배고팠어.

나: (-_ㅡ?)
    전문 뷔페야?

나래: 아니, 그냥 롯데마트 안에 있는 뷔페. 아, 하여튼, 한 그릇 먹었어.
        아, 근데, 막, 내가 게임에서 걸려서 막 섞은 거 먹고 그랬어.

나: 그럼, 두 그릇 먹은거네무얼.

나래: 엥? 아니아니, 막 컵에 쥬스하고 섞은거.
        남자 애들이 막 이상한거 섞어.
        아, 내 친구가 핫소스 섞어서 짱 싫었어.

나: 게임은 어떻게 해?

나래: 음.. 막 처음엔 젓가락 돌리는 거 했다가 다음은 공공칠빵.

나: 요렇게 돌려?

나래: 바보야? 이렇게.

나: 요렇게나 이렇게나 뭐가 다르냐~

나래: 다르지~

나: (-_ㅡ;; )




나래는 대화 중에 '막', '아', '근데' 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한다.
이 '막'이라는 단어 때문에 남자 애들한테 놀림 당한다고.. (...)

나래와의 대화는 가벼운 듯, 가볍지 않은 듯.
나래의 생활을 엿볼 수 있을 듯, 없을 듯.
또 다른 생각을 갸우뚱 갸우뚱.

할 수 있어서 재미가 있다.
반대로 내 청소년 시절에는 나래와 이런 대화가 거의 불가능했더랬는데, 이유인즉 나의 심한 '권위의식'과 '강박증'과도 같은 것 때문이었다.
그게 그 때는 그래야만 한다고, '오빠'라는 존재는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했더랬는데.
또한, 나의 고등학교 시절엔 아부지 대신 임시 가장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했더랬는데.

지금에 와서는 나래에게 많이 미안하고, 큰 소리 치고 혼내고 했던 것이 많이 미안한 터이다.
심할 땐, "이게, 오빠한테 할 소리냐."라는 소리까지 했으니 나의 권위 의식은 참 대단도 했던 것이다.

그래서 지금에 와서는 나래에게 내내 미안해하고 있고, 실제로 오빠가 그랬더래서 미안하단 사과도 했더랬다.
뭐, 나래는 기억하지 못했지만.

그래서 지금에 와서는 이렇게 가벼운 대화로 나래와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하고 있다.
뭐, 가볍다고 표현했지만, 그건 기준의 차이일테지.

동시에 나는 이 작은 대화로 많은 것을 얻어내려 하고 있다.
나의 고등학교 생활이 순탄치 않았다고 생각하기에 나래의 고등학교 생활에 대해서 꾸준히 관심을 기울이는 중이고.
나래가 크는 과정에서 보다 나은, 보다 확실하고 뚜렷한 자기 주관을 갖기를 바라고 있다.

다행히 이 두가지 목적 아닌 목적은 어느 정도 완료되어서 오늘의 짧은 대화에서도 나래의 학교 생활이 여유로움을 알았다.
어제는 게다가 고3 때 반장 선거에 나가면 어떻겠냐고까지 물어서 나래가 더 많은 걸 생각하고 있노라고 추측할 수 있었다.
남자 애들이 어리다고 끙끙거리는 것만 아니라면야..ㅋ'
또한, 실제로 고1 때까지는 '초딩'이라고 자주 놀리곤 했는데, 지금은 농으로라도 초딩이라고 하기 어려울만큼 머리가 커져서 겉으로 표현하진 못해도 속으로 놀래는 적도 적지 않다.


여하튼.
이러이러하다. :)



2008.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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