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제 경제 상황에 따라 내 자금 상황도 그닥 좋지 않.... (...)

그게 아니고, 물리치료다 뭐다 하면서 수입은 없이 지출만 있는 상황이 지속되다 보니, 결국 자금 상황이 악화되었다.
일단, 급한대로 당장 쓰지 않으면서 돈이 되는 것들을 찾아 팔아보기로 했다.
그 참에 나왔던 것이 새로텍 외장하드 하나(은색 하드박스 시리즈)와.
그리고 이어폰 오디오 테크니카 CM7ti.

외장하드는 별 다른 추억도 없고, 여한도 없어서 쉽게 팔아버렸지만, CM7ti는 그러지 못했다.
팔기로 마음 먹는 데에도 하루가 소비되었고, 결국 마음을 먹었지만, 막상 손에 CM7ti를 쥐어보니, 조금은 캄캄했다.

음악에 빠지던 고2 시절에 소니의 명기 MDR-E888을 구입하고는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더 즐겁게 유쾌하게 즐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때부터 이어폰에 빠져 내 손을 거쳐간 것만 10여개는 되는 것 같다.
그 중 기억 남는 것은 얼마 전까지 애삼천(NW-A3000)에 쓰던 E888과 삼성의 EP-1.
그리고 이 녀석, CM7ti.

현재 가격 12만원.
내가 구입할 당시 새제품 15만원 상당의 고가 이어폰에 해달하는 CM7ti는 커널형 이어폰이 아닌 오픈형 이어폰 중에선 왕중에 왕이었다.
888, A8, CM7ti 이 세 녀석이 오픈 이어폰 세계의 삼국지라고 봐도 될만한데, 888은 가격이 하락하면서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의 평가가 낮아졌다.
정말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지만, 어쨌든, CM7ti와 A8의 입지는 완전히 다져져 있다.
반면에 A8의 가격이 상승하면서 이번엔 또 CM7ti보다 좋다는 소리가 있었더랬는데, 아니올시다.
A8의 절대 고음은 CM7ti가 이길 수 없는 부분이지만, CM7ti의 위치는 저중고 음을 확실히 고루 내준다는 A8이 갖지 못한 장점과 매력이 있기 때문에 비교가 불가능하다.

여하튼, CM7ti.
고2 시절에 888과 소니의 디스크맨 시리즈 D777의 궁합으로 사용하다가 시디피의 휴대성에 한계를 느끼고, 하드피 구입을 결심.
HD3를 구입하면서 들리는 말로 궁합의 최고라는 CM7ti를 구입한 것이 이 녀석과의 인연이었다.
나는 이 때까지 중고 장터의 운이 따라주는 편이어서 용케 HD3와 CM7ti를 세트로 판매하시는 분을 만나 질 좋은 제품을 구입할 수 있었다.

888을 구입했을 때는 처음의 맥 빠진 소리에 이내 실망했지만, 2주 정도가 지나서 888의 뻥 터지는 소리를 듣고나서야 888이 마음에 들었더랬으나.
CM7ti는 구입하자마자 쭉쭉 뻗는 소리가 일품이었다.
HD3와의 궁합은 듣던대로 정말 일품이었다.
HD3의 톡톡 쏘는 듯하면서도 명쾌한 음이 CDP에 버금갈 정도였고, 지금도 그리운 녀석 중에 하나지만,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꼭 내 손에 넣어보고 싶기도 하다.

여하튼, CM7ti는 명기였다.
어떤 기기에 물려도 기기의 본 음을 잘 살려주면서 CM7ti의 강조음이 한 쪽에 치우치지 않고, 고루 저중고 음을 내어주니, 단연 으뜸이었다.
888은 기기를 좀 가리는 편이어서 777에만 꽂고 들을 수 있었으나, CM7ti는 어느 기기에나 잘 맞는 편이었고, 주변 친구 녀석들도 이전까지는 고가 이어폰을 이해하지 못하다가 CM7ti만큼은 다르다는 평을 내놓기도 하였다.
(물론 가격에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어폰에 빠진 사람들에게 AV매니아들은 차라리 그 돈으로 저가 스피커를 사서 들어보라는 충고인지 비아냥인지를 많이 하곤 하는데, 나는 엄연히 다른 영역이라 생각된다.
밖에서 음악을 많이 듣는 사람이라면 스피커가 무슨 소용인지 싶고, 이어폰은 이어폰 나름대로의 매력이 있다.
스피커는 다른 잡음이 함께 들리지만, 이어폰은 자신만의 세계에서 자유롭게 헤엄칠 수 있지 않은가.
헤드폰도 있다지만, 휴대가 불편하고.



여하튼, CM7ti를 보냈다.
고1로 보이는 학생에게 택배로 보냈으니, 다음주 월요일에는 받아볼 것이고..
위에서 CM7ti의 성능에 대한 얘기만 했지만, 사실 기기에 애착이 가는 건 성능 때문이 아니라 그 기기에 곁들여진 주인만의 추억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내 CM7ti도 마찬가지.
수백번 귀에 꽂았을 테지만, 꽂을 때마다 다른 느낌, 다른 생각을 이 녀석과 같이 공유했었더랬고, 이 녀석이야말로 나의 생활 모두를 알고 있을테다.
그 뿐 아니라 학창시절에 몸값 비싼 이 녀석 때문에 빌려가는 녀석들은 벌벌 떨기도 했고, 이어폰 줄이 끊어져 한쪽의 소리가 나오지 않을 땐, 정말 심기가 불편하기도 했다.
888과 777의 궁합으로 저음의 매력을 알았고, 저음에만 빠져 살았다면, CM7ti 덕분에 고음이란 걸 알았고, 고음에 빠져, 프레디 머큐리 그 고음의 목소리에 젖었었고, 잠깐이었지만, 클래식에 빠져보기도 했었더랬다.
뭐, 이 녀석 덕분에 음악을 좋아하는 건지 기기를 좋아하는 건지 알송달송했던 적도 있었고, 값 비싼 몸값으로 두고 외출할 때면 늘 불안하기도 했었더랬다.


여하튼, 정든 기기를 하나 보내니 아쉽기는 하다.
이제 음질에 둔감해져서 아이팟과 이어버드의 궁합으로도 만족을 하니 이 녀석이 이제 더 이상 쓸모는 없지만, 단지 이 녀석에만 담겨있는 추억 때문이겠지.
나중에 보고프면 다시 새 것을 구입하거나 중고 다른 것을 구입하면 되겠지만, 그것들에는 내 추억과 손자국이 남아 있지 않으니까.

그래도 예전에 HD3를 보낼 땐, 직거래 후에 집에 오면서 정말 속상했는데, 지금은 뭐 딱히 그렇지는 않다.
그냥 싱숭생숭할 뿐.

아, 얘기하다보니, 또 HD3가 보고프기도 하다.
애삼천이는 절대 팔지 말아야지.
보고플 때, 언제든지 꺼내 보게.
시디피 D777도 그러하고.


여하튼, 굿바이 CM7ti.
나중에 기회가 되거든 다시 보자. :)


아래는 여운이 남는 마지막 사진들과 과거 사진들.


CM7ti와 기본 연장선, 기본 헝겊 주머니, 보증서.


어제 우체국을 가기 전에 찍은 마지막 CM7ti 사진들.
어제 밤에 갑자기 메모리 카드의 사진들이 날아갔다는 메세지를 보여주길래 좌절하다가 오늘 아침에 다시 켜보니, 사진들이 그대로 있는 것을 발견하고 포스팅한다. :)

CM7ti의 기본 구성.
왼쪽부터 보증서와 그 쓸모 없는 헝겊 케이스, 어정쩡한 CM7ti의 길이를 늘려주는 기본 연장선(그러나 중간 연결부가 무거워서 사용이 쉽지 않다.; ), 그리고 CM7ti.


CM7ti




CM7ti_박스샷.


박스와 CM7ti.


ATH-CM7ti


CM7 시리즈는 사실 ti 시리즈 말고 다른 시리즈들도 있다.
여기서 ti는 티타늄을 의미.
다른 것들은 sv라는 실버도 있고, 오렌지색, 파란색 제품도 있다.
가격차는 2만원 정도.


CM7ti와 보증서, SONY NW-A3000.


CM7ti와 애삼천이.

둘의 궁합은 그닥 좋지 않았다. :(
어쩌면, 애삼천이와 E888의 조합이 너무 훌륭해서 그리 들렸는지도.. (...)


CM7ti와 SONY HD3.


CM7ti이와 최고의 궁합, HD3.

애삼천이가 음질이 좋다고는 했지만, 사실 HD3에 비하면 다소 약하지 않나 싶다.
구분하기는 어렵겠지만, 둘의 성향도 많이 다르다.

예를 들어, 드럼 소리를 HD3는 '탕!'하고 내어준다면, A3000은 '텅!'하고 내어주는 편.
HD3가 확실하고 명쾌하게 쏘아준다면 A3000은 부드럽고, 아늑하게 들려주는 편이다.
따라서 HD3의 색깔을 확실히 들어내려면 CM7ti가.
A3000의 색깔을 확실히 들어내려면 E888이 필요한 것.

사진 속의 날짜가 2008년 12월 27일, 오늘자 날짜가 찍혀있는데, 예전에 SPH-V4400이라는 휴대폰으로 찍어둔 것이어서 Exif 데이터가 남아있지 않아 저 모냥이 되었다.
사실은 위 사진과 아래 사진 모두 2006년 어느 때에 찍었던 사진.


CM7ti와 NW-A3000의 리모트, HD3.


CM7ti의 길이가 참 어정쩡하다.
주머니에 플레이어를 넣고 들으면 길이가 딱 맞는 편이어서 귀가 땡겨지는 느낌을 받기도 하는데, 기본 연장선을 쓰면 연결부가 무거워서 귀가 피곤해진다.
그래서 당시 출시되었던 A3000의 리모트를 구입해 뒤에 있는 클립으로 옷에 꽂아 쓰곤 했다.


CM7ti와 소니 CDP의 리모트(일명 떡볶이 리모트).


CM7ti의 시디피 궁합도 일품이었다.
시디피에 들으려면 CM7ti는 되어야 들을 맛이 난다. :)


박스에 넣은 CM7ti.


그리고 마지막 CM7ti의 박스샷.


포스팅 끝.


2008.12.27


+ Recent posts